
김상진
| 조선일보 애틀랜타 주필 |
한국에서는 정치계가 막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유사 이래 없는 20%대로 급락한데다가 국민의힘 당 자체가 비상대책위를 통해 지도부를 싹 갈아 치우려는 혼돈 속을 헤매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도 지도부 선정을 에워싸고 내부 갈등이 심하다.
그 중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나라 전체의 기조를 뒤흔드는 불상사가 아닐 수 없다.
원래 한국은 유권자의 30% 정도가 극단적인 좌경, 사회주의 세력임은 이제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70%만이 이른바 우파, 즉 자유민주주의 지지자이거나 생래(生來)의 소수 무당파로 형성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2달여 만에 24%의 지지율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 짧은 시간에 자유민주주의 세력에서도 무려 3분의 2가까이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계산이 된다.
집권 직후만 하더라도 60%대의 지지율을 보이던 윤 대통령이 왜 이렇게 갑자기 인기(人氣)를 잃은 것일까?
물론 최근에 전 세계를 엄습(掩襲)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대통령의 인기는 곤두박질하게 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집권한지 100일도 안 된 대통령에게 모든 경제적 책임을 뒤집어 씌울 만큼 국민들이 야속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 외에 무언가 국민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 보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좌경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기본 정책에 대해 대체적으로 큰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열렬히 신봉하고, 한.미동맹의 더욱 굳건한 발전을 희망하며, 핵으로 동족을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오히려 굴종하기만 하던 문재인 정권의 그릇된 길을 단호히 배척하고 있는 데 대해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윤 대통령의 ‘대통령답지 않은’언동에 실망하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한다. 특히 오만(傲慢)이나 위압적인 몸가짐은 절대 금물(禁物)이다.
필자는 여러 차례 윤 대통령의 걸음걸이를 거론한 바 있다. 어깨를 쳐들고 팔을 크게 흔들면서, 주변을 위압적인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걷는 폼은 옛 임금이나 독재자를 연상케 할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은 철저히 겸손함이 우러나오는 자세로 일관해야 한다.
얼마 전에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 대통령과 서서 환담하는 장면이 TV에 소개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손을 공손히 앞에 모으고 윤 대통령을 직시(直視)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시종 어깨와 손을 흔들며 시선도 일정치가 않았다.
정치에 있어 지지율은 바로 정권의 생명선이다. 국민의 지지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정치의 ABC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나는 지지율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방언(放言)하기까지 했다. 정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의 실책 중 가장 중대한 것은 그가 지금도 이른바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 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오랜 윤 대통령 측근자 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 운영 전반에 관한 최고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인사로부터 각 부문 정책에 이르기까지 이 들의 건의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은 예가 이번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방한에 관한 실책들이다.
첫 째로 왜 윤 대통령은 방한중인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는가?
도대체 취임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윤 대통령이 갑자기 휴가간다는 자체가 이상하게 보였는데, 결국 이는 펠로시와의 면담을 피하기 위한 술책이었단 말인가?
심지어 펠로시 의장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는 한국 정부 관계 인사가 한 사람도 마중 나가지 않았다니 이런 외교 참사가 있을 수 있는가?
아무리 야 밤 중이었고, 또 미 공군 기지에 내렸기 때문에 펠로시 의장 쪽에서 만류했다는 설명이지만 누가 그 것을 곧이듣겠는가? 무조건 최고위 급 인사가 마중 나갔어야 한다.
아무래도 이번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극도로 흥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는 게 대 중국 관계로 보아 유리할 것 같다는 측근의 건의에 따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를 알고 둘을 모르는 행위이다. 펠로시 의장의 이번 대만 방문은 중국의 용서 못할 인권 침해행위를 규탄하겠다는 펠로시 의장, 나아가서는 미국의 단호한 결의를 나타내기 위한 거의 결사적인 ‘입장 천명 행위’였다.
이런 미국측 행위의 비중(比重)도 가늠하지 못하고, 한국의 중국관계나 이해득실만 생각하고 누가 윤 대통령에게 펠로시와의 면담 회피를 건의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이런 자들을 측근에 계속 두고 정리하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은 앞으로 더 무서운 민심 이탈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권을 패퇴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을 적화통일의 음모에서 구출해 낸 공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도 한 가지 더, 꼭 이루어야 할 역사적 책무(責務)가 남아 있다.
그것은 2년 후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현재와 같은 20%대 정도를 맴도는 상태에서 오는 총선거에서 다시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그 것을 넘어 3분의 2 선 까지 육박, 혹은 3분의 2선을 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發議)하여 이를 가결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 이후의 사태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러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지금의 역경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2년내에 전력을 다해 한국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다. 온 세계가 격심한 경제 위기에 빠진 가운데 한국만이 케인즈 방식이 아닌 슘페터 방식으로 경제 대개혁을 일으켜 온 국민의 창의력을 총동원한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하늘로 치솟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윤 대통령 스스로가 신변의 구태(舊態)를 하루 속히 혁신하고 더욱 빨리 정치의 진수(眞髓)를 터득해야 한다.
시간은 2년 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