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진
| 조선일보 애틀랜타 주필 |
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지구(地球)상의 인류가 지금 생존이냐 공멸(共滅)이냐는 갈림 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까지 가진 인류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무기를 들고 싸우게 되면 결국 지구도 주변의 모든 행성들처럼 죽음의 폐허(廢墟)가 되고 말 것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이 우주 자체가 거의 무한대로 많은 행성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의 흔적은 한 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제임스 웹’호 망원경으로 살펴 볼 때 생물이 살만한 수증기(水蒸氣)가 보이는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 보려 해도 1150광년(光年)이나 떨어져 있다고 한다.
거기 까지 사람이 가 보려면 음속(音速)의 100배, 즉 마하(Mach) 100의 로켓을 발명해 낸다 해도 자그마치 1천만 년이나 걸린다는 계산이다.
만약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오로지 이 지구상에만 80억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자체가 이변(異變)중의 이변이며 둘도 없는 커다란 기적(奇蹟)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인류는 지금 너무나 자가도취(自家陶醉)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이 크게 발달하여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구는 20억 명 정도의 인구 밖에 감당하지 못하리라던 것이 금년 말이면 80억 명이 지구를 빽빽이 메우게 되었다. 사실은 이 같은 인류의 번영도 최근 30년 정도 안에 이루어진 일이다. 학자들은 지금의 인류 전성기가 ‘세계화 시대’의 형성으로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란 온 세계가 ‘자발적’으로 서로 탁 터놓고 개방하여 모두 손잡고 서로를 돕는 개방사회가 된 것을 뜻한다.
과거에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 칸, 나폴레옹 등이 대제국(大帝國)을 이룩한 일은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무력에 의한 강제적 정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루어진 세계화시대는 주로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자발적으로 손잡고 인류의 공존공영(共存共榮)을 위해 서로 전폭적인 협조를 하게 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추진하다가 1991년 소련을 해체하고 대통령을 직선하는 민주국가로 재탄생케 했다.
중국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의 1인 종신독재 제도를 폐기하고 한 사람이 10년 이상 집권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장을 선포했다. 그리고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경제적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세계가 놀라는 중국의 경제적 대 도약을 이루었다.
온 세계가 통틀어 자유시장을 형성하게 되었고 모든 개인이 최대한도의 창의력을 자유로이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온 세계를 뒤엎게 되었다.
2000년 초에 러시아의 실권을 장악한 푸틴이 오는 2036년까지 장기적으로 대통령 자리를 장악하게 되자 악령(惡靈)의 포로(捕虜)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함으로써 30년간의 세계화시대에 종지부(終止符)를 찍고 만 것이다.
그와 동시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도 덩샤오핑의 10년 이상 집권 금지 헌장을 폐기하고 1인 장기 집권에 나섬과 동시에 푸틴과 손잡고 반 자유민주주의 전선(戰線)을 펴고 있다.
이로 인해 당장에 세계 경제에 이상(異常)이 생겼다. 석유, 천연 가스, 곡물(穀物)등에 큰 공급 이상이 생기자 곧 대부분의 자유 국가들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물가가 오르면 어느 나라 정부나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제일 먼저 쓰는 수단이 금리 인상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이것을 케인즈(Keynes) 방식이라고 한다. 금리 조절로 물가를 다스리면서 정부 지출 등 재정 정책을 섞어 단시일 내에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본래의 목적은 잘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전반적인 경기 침체(recession)를 일으켜 급기야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늪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더 많다.
이런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를 조속히 되살리기 위해서는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주장한‘공급혁신’방식을 가동해야 한다는 설도 많다.
정부가 나서서 금리를 올리고 재정 투입을 하는 등의 방식보다 정부는 뒤로 물러서고 기업가들이 주동이 되어 새로운 상품.서비스를 내놓고 소비를 자극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이 앞서서 금리를 대폭 올리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이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외화 도피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은 난국을 정확하고 예민하게 파악하고 최고의 예지로서 최단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면 나라의 최고 지성과 전문가들이 정부 요직에 등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인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고 그에 대한 지지율이 30%로 폭락한 상태이다.
대통령에 취임한지 100일도 안 됐는데 이렇게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심지어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벌써 윤 대통령 탄핵론까지 들먹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의 제의와 재적 3분의2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현재 169석으로 과반수(150석)는 넘었으나 3분의2에는 31석이나 모자라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때를 보더라도 지나치게 지지율이 떨어질 경우 여권 내부의 배반을 유발할 가능성도 항상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윤 대통령의 경우는 일생을 검찰 업무로 보낸 데서 오는 깊이 박힌 특수 성벽(性癖)을 하루아침에 떨쳐 내기가 무척 어려우리라는 것을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는 후보 시절이었던 금년 1월1일 신년 인사회에서 구두를 벗고 카메라 앞에서 큰 절을 하더니 “문재인 정부를 보며 오만은 곧 독약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우리 자신에게 그런 모습이 있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고 말했다. 당시 캠프 인사들은 “자기주장을 고집하던 이 후보가 이때부터 다른 사람의 고언(苦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당선되자 도로 옛 모습으로 돌아갔다. 걸음걸이에 옛 오만의 티가 그 대로 보이고 “나는 여론조사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방언(放言)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소름 끼치는 예감마저 느낀다. 인류가 살아남는 길은 모두가 오만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아래 화합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銘心)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