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불볕더위로 사상 최고기온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는 유럽에서 수돗물 사용 제한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더위를 식히려 물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물 부족 사태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돗물을 식수와 샤워 등에만 쓰도록 하는가 하면, 미장원에서 머리를 두 번 이상 감지 못하게 제한하는 고육책까지 등장했다.
스위스 남부 티치노의 멘드리시오 시당국은 지난 15일부터 집 밖에서 수돗물을 쓰는 행위를 금지했다. 수영장에 물 채우기나 정원에 물 주기, 세차(洗車) 등이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적발되면 최대 1만 스위스프랑(약 13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멘드리시오 시 당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폭염으로 물 사용량이 늘면서, 주요 상수원인 지하수 수위가 위험 수준까지 내려갔다”며 “시민의 물 사용 억제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당부했다.
티치노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이탈리아 북부 중심 도시 밀라노에서 약 100㎞ 떨어져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DW)는 “연이은 더위와 가뭄으로 이탈리아 북부 일대가 심각한 물 부족 상태”라고 전했다. 이 지역에 식수와 농업·공업용수를 공급하는 포강과 도라 발테아강의 수위가 예년의 8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선 8월 말까지 정원과 운동장에 물 뿌리기, 테라스 물청소 등이 금지됐다. 텃밭에는 야간에만 물을 주도록 했다. 낮에 물을 뿌리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피사에선 식수와 몸을 씻는 용도 외에 수돗물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최대 500유로(약 67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볼로냐 인근 소도시 카스테나소는 미용실에서 손님이 머리를 두 번 이상 감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하루 수천L의 물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크로아티아 서부 이스트리아주(州)는 18일 ‘수돗물 남용(濫用)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수돗물로 도로와 공공시설, 차량 등을 청소하거나 녹지에 물을 주면 안 된다. 주 정부 관계자는 “8월까지 강수량이 충분치 않을 것으로 예보됐다”며 “적발될 경우 수돗물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런던의 낮 온도가 40도를 돌파한 영국에서는 수도 업체들이 비상 대응에 나섰다. 런던과 에식스, 서리 등 영국 남동부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어피니티워터는 “물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해 18일부터 수압을 낮추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파리=정철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