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낙태 합법화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낙태권 보장을 요구하는 단체 중 일부가 물리력 행사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제인의 복수(Jane’s Revenge)’란 이름의 단체는 최근 한 달여간 미 각지에서 낙태 불법화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보수 단체와 교회 등 50여 곳에서 불을 지르고 기물을 파손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지난달 9일 위스콘신주 매디슨의 ‘위스콘신 패밀리 액션’ 본부 화재와 지난 7일 뉴욕주 에머스트의 반(反)낙태 클리닉 ‘컴패스케어’에 대한 화염병 투척 등이 이 단체의 소행이라고 한다. 이들은 14일(현지 시각) 홈페이지에 선언문을 올리고 “우리가 전국의 반낙태 기관(2000여 곳)에 운영을 중단하라고 최후 통첩한 지 한 달이 됐다. 이젠 ‘오픈 시즌’(사냥 허가 기간)”이라며 공격 수위를 높이겠다고 경고했다.
이 단체의 리더가 누구인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범행 현장에서 복면을 한 여성 네댓 명이 CCTV 화면에 포착된 것으로 미뤄, 극렬 여성 단체와 무정부주의 좌파 단체 등이 연합한 것으로 보인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단체 이름은 살해당한 전 남편에 대한 여성의 폭력적 복수를 그린 서부극 스타일 영화 ‘어쌔신 리벤지(원제 Calamity Jane’s Revenge·2015년 작)’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공격 대상으로 삼은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붉은 페인트를 뿌리고, ‘낙태권을 건드리면 너희도 무사하지 못할 것’ ‘제인으로부터’ ‘제인의 복수’ 같은 글귀를 남겼다. 테러 행위에 따른 인명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15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국토안보부는 ‘제인의 복수’를 국내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8일에는 보수 성향 브렛 캐버노 대법관의 메릴랜드주 자택에 무장한 20대 남성이 찾아와 “낙태 불법화를 지지하는 캐버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다 체포됐다. 이 남성이 ‘제인의 복수’와 관련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태 직후 의회는 대법관 전원과 가족의 신변 경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초 대법원 내에서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내용의 다수 의견 초안이 회람 되고 있다는 사실이 폴리티코 보도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르면 이달 말 판결을 확정하며, 미국 25개 주 이상이 낙태를 불법화하거나 제한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정시행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