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진
| 조선일보 애틀랜타 주필 |
대한민국은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좌경(左傾) 독재체제 신봉자(信奉者)들의 강력한 도전을 물리치고 이긴 것이다.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어느 쪽이 이길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처럼 자유를 말살하려는 자들의 기세가 드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온 인류가 공존공영(共存共榮)하려면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단결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은 아무도 움직일 수 없는 공리(公理)가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에 상치(相馳)되는 적대 이념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독재세력이다.
한 가지 문제는 이 인류의 생존에 치명적인 파괴세력들은 밖으로는 ‘가장 정의로운 자’의 가면을 쓰고 그들의 정체를 감추는 경우가 거의 상례(常例)라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밖으로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가장하면서도 ‘자유’라는 낱말은 마치 독사(毒蛇)를 피하듯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만큼 자유민주주의와 독재세력은 서로 결코 양립될 수 없는 적(敵)인 것이다.
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는 인류가 모두 멸망하는가는 최근까지의 세계 역사가 적나라(赤裸裸)하게 이를 실증해 보여주고 있다.
소련이 1991년에 붕괴했고, 중남미, 동 유럽 등에서 시도(試圖)된 모든 사회주의 정권이 모두 몰락(沒落)했다. 중국이 아직 사회주의 국가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인 면에서는 자유 경제 정책을 편용(便用)함으로써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자유민주주의라야만 인류가 번창하고 공산, 사회주의로는 왜 모두 멸망하는 것일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인간의 속성(屬性), 즉 사람의 됨됨이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말살되는 순간, 그 나라는 독재국가가 되고 말기 때문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해 3권이 분립되고, 모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며, 집권자는 대다수의 민주국가들처럼 임기 4년, 많아야 8년 지나면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 사람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10년 이상 전권을 휘두르게 되면 인간의 속성 상, 반드시, 예외 없이 부패, 타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1인 장기 집권이 반드시 독재와 멸망을 초래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러시아의 대통령직에 오른 푸틴은 초기에는 서방 국가들의 축복을 받았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재임 기간 16년 동안에 60회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허심탄회(虛心坦懷)’한 친교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것은 모두 허사(虛事)였다. 메르켈은“구(舊) 소련 붕괴 이후 긴 시간 유럽 각국은 러시아와 대립을 끝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며“우크라이나 전쟁은 야만적 행위이며 국제법을 위반한 기습행위로, 어떤 관점에서도 용서될 수 없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20년이란 긴 세월에 걸친 1인 집권이 푸틴을 부패한 독재자로 탈바꿈한 데 대한 분통이었다.
미국에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기 사례(事例)는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직전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의 경우가 최악이었던 것 같다.
1970년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지난 5일 워싱턴포스트 공동 기고를 통해 2024년 대통령 재출마 설이 나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들은 “트럼프는 (워터게이트의) 닉슨 대통령의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기만행위를 했다”며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선동적(seditious)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말이 선동이지 반란이라 할 만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이 기고문에서 “우리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익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대통령이 (닉슨 이후로) 없을 것이라 믿었다”며 “2020년 선거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노력은 닉슨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독재자의 길로 빠져드는 자들의 초기 증후군(症候群)에는 유사(類似)한 점이 많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오만(傲慢)함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는 곧 아집(我執)과 편집광(偏執狂)적 망상을 유발한다. 남이 볼 때, 이들은 걷는 자세부터 거만하고 건방지게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언(苦言)을 보내고자 한다.
필자만 하더라도 수년전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 씨가 가끔 TV에 나올 때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위압적인 자세로 걷는가?”고 못마땅하게 생각 한 때가 많았다. 물론 그 당시는 추상(秋霜)과 같은 사법의 칼날로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위압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른다. 요즘은 사람들이 그의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평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지금 선량한 일반 국민들을 받들고 살아야 할 정치인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자기가 한 말에 무조건 얽매어 고집을 부릴 필요도 없다. 선거 중에 한 약속이라고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청와대를 비운 것도 재고의 여지가 충분이 있었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최근에 큰 파탄(破綻)이 하나 생겼다. 대한민국에는 이번에 독재국가로 갈 수 있는 커다란 쐐기 하나가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에 꽂혀 버렸다. ‘검수완박’이 바로 그 것이다.
사법 수사기관이 대통령이 통제하는 행정부 산하(傘下) 조직이 되면 그 것이 바로 독재국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수사권을 대통령 휘하의 경찰이 장악하게 되면 집권세력의 위법행위를 누가 수사하겠는가? 이런 짓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최종일에 저지르고 떠났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최단 시일 내에 이 ‘검수완박’법을 없애고 대한민국을 굳건한 3권 분립의 자유국가로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아무튼 지금은 선거 기간 때와는 국내외 정세가 크게 변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전 세계에 인플레의 폭풍이 거세다.
자유민주주의란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받드는 것이며, 국민의 자유로운 창의력을 최대한도로 보장해 주는 길 만이 전 인류가 무한히 번영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