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진
| 조선일보 애틀랜타 주필 |
사람들의 사물 판단력은 흐릴 때가 꽤 많다. 특히 큰 사건일수록 외견(外見)에만 이목(耳目)이 팔려 본질 문제는 파악하지 못한 채 흘러가기가 쉽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 ‘검수완박’법 개정을 완성하고 자리를 떴다.
아마 속으로 ‘쾌재(快哉)’를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검수완박’이 얼마나 엄청난 숨은 목적을 지닌 공작(工作)이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검수완박’ 즉 ‘검찰로부터 범죄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데 대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 신임 대통령은 취임 바로 다음 날로부터 문재인 정권의 주요 간부들에 대한 범죄수사에 착수하거나, 이미 미지근하게나마 진행되어 오던 범죄수사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 자신, 그리고 희대(稀代)의 대장동 의혹 사건의 당사자인 이재명 전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추상(秋霜)과 같은 수사의 칼날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검찰이 수사권을 일체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상책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면 ‘검수완박’은 곧 들이닥칠 문 정권 인사들에 대한 법망(法網)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초부터 이 설명은 허무맹랑한 잠꼬대에 불과했다.
검찰이 아니면 경찰이 이 수사를 맡게 될 것인데, 그래 경찰은 누구 편을 들 것 같으냐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일 뿐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밖에 볼 수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뿌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뿌리인 검찰을 완전히 뽑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비약(飛躍)적인 단정이라고 일부에서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의 독립성은 민주주의 근간(根幹) 자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과제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하려면 우선 독재(獨裁)를 근절(根絶)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이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그런데 사법부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범죄나 위법행위에 대한 독자적인 수사권이 절대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만약 검찰이 모든 범죄수사를 경찰에 위임한다면, 검찰은 대통령의 휘하(麾下)에 있는 경찰을 위한 대서(代書)방 구실 밖에 하지 못한다. 이것이야 말로 바로 독재에의 지름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를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보여주는 역사적인 실례를 들자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참담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의 경우에서 그 전형적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6일 이탈리아의 토스카나(Tuscan) 항구에서 경찰 당국은 초호화 유람선 한 척을 나포(拿捕)했다. 길이 459피트나 되는 이 배의 소유주(所有主)는 놀랍게도 푸틴이라는 것이다.
이 배의 내부를 보고 온 세계가 푸틴이 지배하는 러시아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은 완전히 금박(金箔)으로 뒤덮여 있었고, 헬리콥터 내려앉는 데가 있었고, 무도연(舞蹈宴)으로도 쓸 수 있는 커다란 풀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푸틴 개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에 놀라는 것은 사물을 피상적(皮相的)으로 밖에 볼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려면 뇌물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청탁과 불법이 통용되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蔓延)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러시아 전체가 이 같은 부패를 감싸고 일상화하도록까지 타락한 것이다. 러시아의 부패는 이미 소련 시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1년 갑자기 소련이 해체되고 자유민주주의가 채택되자 사회 모든 면에 자유가 널리 퍼졌다. 문제는 부도덕적인 범죄행위나 부패행위까지도 통제력을 잃고 널리 퍼져버린 데 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언론이나 집회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엄격한 사법제도의 규제 없이는 사회 전체를 혼돈의 범죄 온상지로 타락시킬 뿐이다.
여기에서 사법제도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결국 이것만이 자유민주주의의 존폐(存廢)를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뿌리라는 엄연한 사실을 모두 인식하게 될 줄 믿는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에서 사법의 독립을 뿌리 뽑는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파괴, 절멸(絶滅)시키자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 또는 몰라서 ‘검수완박’으로 검찰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려 한 것일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은 이런 사리(事理)를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으며, 또 알고 모르고 간에 그런 일을 한 이상은 이에 대한 응분의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천하의 공리(公理)라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에서 왜 이같은 일이 일어났는가?
오직 한 가지, 대한민국 국민의 최소한 30% 이상이 공산,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고, 필사적으로 ‘적색(赤色)혁명’과 ‘적화(赤化)통일’을 이루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력의 뿌리는 멀리 독립운동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독립운동 때의 행적을 내세운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 아래 형성한 북한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동질감을 감추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도 “지금은 타협과 협치의 시대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소신을 피력했다.
한국의 적색 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나 자본 시장 경제에 대해 격렬한 적개심(敵愾心)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리 타협이나 협치를 간청해 봐야 그 쪽에서 들어줄 리도 만무하다.
특히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이들도 대한민국 헌법과 이에 근거한 국가보안법 등의 통제하에 있는 만큼 여간해서는 본색(本色)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따금 식 예외적으로 조국 전 법무장관처럼 국회 청문회에서 “나는 지금도 사화주의를 신봉하고 있다”고 실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카무플라주(camouflage) 하기 때문에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는 21세기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깨달을 때가 되었다.
온 인류가 손을 맞잡고 무한한 창의력으로 곧 닥아 올 인구 100억명 시대를 행복하게 맞이하려면 일그러진 정의감에 사로잡힌 적색분자들은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