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에너지 가격 오른 것이 원인"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동기대비 7.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82년 이후 40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격적 행동에 시장이 반응하며 가스, 에너지 가격이 오른 것이 원인”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노동부의 CPI 발표 직후 관련 성명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초래한 물가 급등의 영향을 가정에서 느끼기 시작했다”며 ▲전략비축유 방출 ▲공급망 강화 ▲가격 인하를 위한 경쟁 촉진 등 정부가 현재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을 언급했다.
미국의 2월 CPI는 시장 전망치(7.8%)보다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로도 0.8% 올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과 전월보다 각각 6.4%, 0.5% 올랐다.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리부터 선 긋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치솟은 국제유가의 영향은 이날 통계에 아직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2월 CPI를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탓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심각한 문제였다”고 꼬집었고, AP통신은 공급망 병목현상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가운데 고용과 소비가 회복하며 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로 하루 500만배럴 이상의 공급이 줄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케빈 커민스 나트웨스트마켓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넘으면 4월 미국 CPI 상승률이 9.7%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9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4월물) 가격은 전날보다 12.1%(15달러) 떨어진 배럴당 108.7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날 런던 ICE 상품거래소에서 브렌트유(5월물)도 전날보다 13.2% 하락한 배럴 당 111.1달러에 거래됐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라크가 나란히 증산에 나서겠다고 밝힌 효과다.
시장은 당장 한숨 돌렸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UAE와 이라크가 원유 생산을 늘려도 러시아의 막대한 원유 생산량을 곧바로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석유 및 정유제품 일일 수출량은 700만배럴로, 전 세계 공급량의 약 7%에 해당한다.
CNBC는 복수의 에너지업계 전문가를 인용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산유량을 늘리더라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분쟁이 계속될 경우 여전히 러시아산 석유의 공급량이 제한되면서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제까지는 상품 수요 급증, 공급망 악화, 물류 대란 등이 인플레이션을 주도했으나 앞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세계 각국의 제재 등에 따른 경제적 혼란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플레이션 부담이 커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가 ‘베이비 스텝’ 기조를 유지할지도 주목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일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 금리의 목표 범위를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0.25%포인트 인상을 지지하려 한다”고 말한 바 있다. FOMC는 오는 15~16일 열린다.
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