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존슨카운티, 노예소유한 전 부통령 ‘존슨’ 이름 퇴출하고 흑인 여성 역사학자 ‘존슨’ 이름 붙여
결과적으로 철자는 그대로…행정비용은 대폭 절감 전망
미 아이오와주 동부에 있는 존슨 카운티(county·한국의 군에 해당하는 행정구역)는 리처드 멘토 존슨 전 미국 부통령(1837~1841년 재임)의 이름을 따서 1837년 명명됐다. 그랬던 이곳이 인종차별 등 과거사의 부정적인 면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184년만에 행정구역 이름을 바꾸는 개정안을 지난 24일 카운티 행정위원회에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지도와 각종 공문서 등 행정서식에서 카운티 이름이 변경된다. 하지만 변경으로 각종 행정 비용은 많이 들지 않을 전망이다. 새로 바꾼 이름이 영어 철자가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은 존슨(Johnson) 카운티이기 때문이다.
미 아이오와주 존슨카운티 당국이 공식 트위터로 카운티 이름을 상징하는 인물로 리처드 멘토 존슨 전 부통령애서 룰루 멀 존슨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트위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를 미 공영방송 NPR과 미국의소리(VOA)가 2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카운티 당국 이사회는 현재 이름 존슨 카운티를 존슨 카운티로 바꾸는 방침을 투표를 통해 확정했다. 말장난 같지만 상당한 의미가 깃든 변화다. 전자의 존슨은 백인 남성 정치인이고 후자의 존슨은 1995년 타계한 흑인 여성 역사학자, 룰루 멀 존슨이기 때문이다. 전직 부통령 존슨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킨 역사학자 존슨은 여성과 흑인의 이중 차별을 이겨낸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1907년 아이오와주의 그래비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노예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여성의 딸이었다. 그가 1925년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를 포함해서 흑인 여학생은 14명이었다.
184년만에 행정구역 명칭을 '존슨'에서 '존슨'으로 바꾼 존슨 카운티. /트위터
그는 이 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흑인 여학생이 됐다. 미국 대학이 배출한 통산 10번째 흑인 여성 박사였다고 NPR은 전했다. ’1787~1858년, 옛 북서부 지역의 노예제도의 문제'라는 논문제목이 말해주듯 그는 미국 흑인사회의 역사를 깊이있게 연구했다.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캠퍼스 내 관사 입주자격을 얻지 못해서 학교 밖에서 다른 흑인 여성들과 살아야했다. 또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교수 임용 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그는 흑인 교육을 위해 설립 운영된 유서깊은 흑인대학 몇 곳에서 강의를 하다가 1952년 펜실베이니아주 체이니대 교수로 임용됐고 학장까지 지냈다. 존슨 카운티의 이름을 바꾸자는 움직임은 지난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던 흑인인권운동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의 여파로 본격화됐다.
1837년부터 1841년까지 미국 부통령을 지낸 리처드 멘토 존슨. 그가 노예 소유주고 아이오와와 인연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그의 이름은 184년만에 아이오와주 존슨 카운티에서 빠지게 됐다. /미 국립 아트 갤러리
기존 카운티 이름의 기원이 됐던 리처드 멘토 존슨의 전력이 논란이 되면서 개명 여론이 힘을 받은 것이다. 우선 리처드 멘터 존슨의 개인사와 행적이 흑인차별로 얼룩져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존슨 전 부통령은 흑인 여성 노예와의 사이에서 아이 둘을 낳았고, 또 다른 여성 흑인 노예가 도망치자 뒤쫓아가 잡아온 뒤에 혹독하게 탄압했거나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켄터키주 상원의원으로 정치 이력을 시작한 그가 정작 아이오와주와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는 점도 카운티 이름 개명에 당위성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됐다. 카운티 이름 변경 권한을 가진 행정위원회의 유일한 흑인 위원인 로이신 포터 부위원장은 “인종과 성차별에 맞서 성공을 향해 나아간 그의 이야기는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