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애틀랜타에서는 최근에 열린 한미 정상화담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총영사 박윤주)과 ‘애틀랜타월드페어카운슬’이 공동으로 마련한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한미 동맹이 복원되었다고 찬양했다.
웨비나(웨브-세미나)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전 주한 미국 대사인 캐서린 스티븐스는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강화, 민주주의 복원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강조하고 “특히 한국은 경제사절단을 대동하고, 수십 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는 최근까지 한미 동맹 관계가 매우 위태로웠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를 낳아 씁쓸한 맛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그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대 북한 관계에 있어 미국과는 매우 다른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해 미국의 역린(逆鱗)을 거슬러 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는 무력이 아니고 오로지 대화로만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우선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어떤 형태로라도 먼저 완화해 주는 것이 필수적인 조치라고 강조해 왔다. 심지어 이번 정상회담을 전후해서도 금강산 관광 등을 먼저 재개하자고 요청했다가 미국 측의 강한 반대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 유화(宥和)책은 미국의 반발을 샀을 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의 반감마저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9일의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문 대통령은 일단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대폭 양보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의 안보는 엉망진창의 지경으로 빠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 시설은 전면 가동되어 핵무기 숫자는 늘고, 미사일 등 신무기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당 8차 대회에서 전술핵무기,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다탄두(多彈頭) 및 고체연료 ICBM 개발 등을 공식화했다.
북한이 지난 3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KN-23 개량형 미사일(최대 사거리 600km)은 이미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에서 무기 체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군의 기강(紀綱)문제이다.
스티븐 비들 미 콜롬비아대 교수는 1.2차 세계대전과 걸프전 등을 분석,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무기 수준이나 병력 규모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 즉 전투력 운용의 현대적 체계에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 한국군은 각종 무기 체계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군기강까지 만신창이의 상태이다. 최근의 사병 부실 급식 사건이나 공군 성추행 부사관 사망 사건 등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 ‘한미 연합 훈련 실시 여부를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군의 기강을 바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큰 문제가 발생했다.
국가정보원 전직 직원들이 박지원 원장 파면을 요구하고 시위에 나섰다. 국정원앞에서 시위 중인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지원 모임’은 지난 24일 성명에서 “우리는 국정원 원훈석(院訓石) 교체 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해 온 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한 즉각적인 파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구한다”고 성명하고 나섰다.
‘원훈석’이란 국정원 앞뜰에 놓인 원훈(院訓)을 새긴 비석(碑石)을 말한다.
국정원은 창설 60주년을 앞두고 새 원훈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꾸고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원훈석 제막 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그 원훈석에 새겨진 한글 필체(筆體)가 고(故)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어깨동무 체’라는 것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징역형을 지낸 후 1988년 출옥했다. 통혁당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시로 대한민국 전복을 목표로 했던 지하당이다.
국정원 전 직원들은 ‘박지원은 평양 국정원장인가?’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문 대통령이 박 원장에 대한 즉각적인 파면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마지막 한 사람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가면서 투쟁 수위를 높여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현 정권은 지난 해 말에 국정원법을 고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하는 작업을 시작한 데 이어, 국가보안법의 폐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종국적인 주한미군 철수,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등 대한민국 안보의 명줄을 끊으려는 제도적 장치 설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북한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문 정권 임기 안에 매듭지으려는 일련의 수순이 진행중이라는 데서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 같은 한국 내의 움직임이 미국이나 일본의 수뇌부에 보고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TV 상으로도 이따금 씩 드러나지만 스가 일본 수상이 문 대통령 쪽을 처다 볼 때의 눈초리는 그야 말로 의심과 반(半) 증오에 가까운 심한 경계를 나타내는 표정이 역력(歷歷)히 보인다.
지난 번 영국에서 열렸던 G7 회담 때도 문 대통령과 스가 수상은 약식 회담을 10분가량 하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또는 동의)’했었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가 서울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 무관에게 “한국 해군의 동해 영토 수호훈련이 15일부터 열린다”고 통보한 사실이 전해지자 사태는 돌변했다. 일본 측에서 “회담을 취소하는 것이 어떠냐”고 요청했고, 한국도 이에 동의했다. 다만 현장 사정에 따라 ‘애드리브(즉흥) 회담’을 하는 것은 두 정상에 맡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수차례 애드리브 회담을 시도했으나 스가 수상이 이를 모두 피해버렸다고 한다.
이래가지고 무엇이 되겠다는 것인가?
앞으로 세계는 더욱 더 정통(正統)적인 자유민주주의와 반역사적인 독재 좌경 세력 간의 충돌이 격화될 것이다. 한국과 같은 나라가 양다리를 걸쳐 줄타기를 하려 해도 될 일이 아니다.
한국은 오는 대선에서 확고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복귀하지 않는 한 세계적 고아(孤兒)로 떠돌이 신세가 되고, 고립무원(孤立無援)한 가운데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의 희생물로 피바다가 되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