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급증하는 총기범죄에 초점을 맞춘 종합 예방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미 전역에서 총기에 의한 살인사건이 크게 늘어 사회 문제로 부상하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범죄 대응이 지난 정부에 비해 부실하다는 비판 여론 속에 내년 중간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법무부와 재무부, 연방정부 및 주정부 치안당국과 연석회의를 마친 뒤 ”총기를 소지할 수 없는 자에게 고의로 총기를 판매하거나 신원조회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범죄에 사용된 총기 추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다가 적발될 경우 총기판매상의 면허를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신원조회만 엄격하게 시행해도 총기가 범죄자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이날 연설에서 이들 총기상을 ‘죽음의 상인’으로 지칭하며 무관용 원칙을 거듭 밝혔다. 또 “우리는 당신이 거리에서 죽음과 대혼란을 팔지 못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각종 통계상 유독 여름에 범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전염병 대유행에서 벗어나고 외부 생활이 정상화하면서 여름 범죄 급증세가 더욱 확연히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치안 인력 지원 및 폭력 중재 단체에 3500억달러 지원
CNN에 따르면 지난해 미 도심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총기 공격도 8% 이상 늘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비영리단체 ‘총기 폭력 아카이브'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들어 미국 내 총격 사건으로 하루 평균 54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책에 따라 재무부는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역 치안 유지 업무에 동원된 경찰관에게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고, 총기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에 투자하며 지역 내 반폭력 단체를 지원하는 데 3500억달러의 예산을 쓰도록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통과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제구제계획에 포함된 경찰 지원기금을 강조하며 “지금은 법 집행기관이나 지역 사회에 등을 돌리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경찰 지원 문제를 두고 여야 간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다. 지난해 5월 미니애폴리스 경찰관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사건 이후 민주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개혁과 자금 지원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경찰 개혁을 앞세워 공공 치안을 약화시킨다며 공세를 폈다.
◇與 “인종차별 경찰 지원 축소” 野 “치안 유지”...고심 깊어진 바이든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인종차별 금지와 치안 유지라는 전국적인 요구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러한 대책을 내놨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경찰 권력 남용에 대한 감독을 요구받는 동시에 치솟는 범죄 및 살인율을 해결하라는 사회적 요구와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흑인 유권자를 우대해 당선된 바이든은 이제 범죄 대응이 미흡하다는 보수진영뿐 아니라 경찰 개혁을 추진하려는 진보세력과도 대면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부통령은 경찰 개혁과 범죄 척결이라는 목표가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폭력의 주요 동기가 총기에 의한 것으로 보고,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경찰을 관리 및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WP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여권이 진보적 기조와 범죄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고심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대책 발표는 “미국 도시에서 급증하는 폭력 범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논쟁'으로 백악관을 몰아넣었다”며 “자칫 범죄가 정치화되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야후뉴스와 설문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를 인용해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잠재적 책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총기 사건 등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는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범죄’를 꼽았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범죄 대응에 대해 ‘미흡하다'는 응답이 44%로 ‘적절하다’(36%)라는 응답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