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애플을 최대 경쟁자로 지목했다. 애플의 새 프라이버시 정책으로 촉발된 ‘광고 시장 축소’ 논란이 빅테크 기업 간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27일(현지 시각) "애플은 이용자들을 위해 이러한 정책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이 정책은 경쟁업체들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페이스북과 업계는 가까운 미래에 이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페이스북 대(對) 애플 양강구도의 서막을 알렸다.
저커버그는 이날 2020년 4분기 실적발표에 앞서 이같이 밝히고 "애플은 페이스북과 다른 앱들에 훼방을 놓아 얻는 이익이 많다. 애플은 지금도 지배적인 플랫폼 지위를 사용해 그렇게 하고 있다"며 "(새 정책이 반영된) iOS14 업데이트를 포함해 애플의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 수백만 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은 향후 이용자들에게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하고 앱을 선택할 권한을 준다는 방침이다. 이용자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앱을 열었을 때 ‘해당 앱이 당신의 활동을 다른 회사 앱과 웹사이트에 걸쳐 추적하는 것을 허락하십니까?’라고 묻는 팝업을 띄우는 식이다. 업계 관행을 이용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로 공개해 데이터 투명성을 높인다는 것인데, 업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그 선봉에 선 것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소상공인 보호와 인터넷 자유를 앞세워 애플의 새 정책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맞춤형 광고가 어려워질 경우 소규모 사업자들이 가장 먼저 쓰러질 것이며, 이는 결국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페이스북은 이에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전면 광고를 게재하고, 애플과 앱스토어 결제 수수료 문제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포트나이트’ 개발사 에픽게임스와도 손을 잡았다.
양측이 그럴듯한 명분을 쥐고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핵심은 비즈니스 모델 싸움이다. 애플이 새 정책을 도입하면 데이터 개방과 무료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얻는 페이스북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용자가 직접 서비스 비용을 지불해 광고주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을 선택한 애플은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애플이 새 정책을 도입할 경우 자사 광고 매출이 정확히 반토막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따라서 당장은 애플 쪽이 승기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무단제공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지켜주는 정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는 애플 프라이버시 정책 도입시 이용자 80~90%가 데이터 추적을 거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높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여태까지도 알게 모르게 데이터가 빠져 나갔는데, 굳이 비싼 값을 지불해가면서 서비스를 이용할 가치를 못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Metaverse) 선두주자인 에픽게임스와 전선을 꾸린 것도 변수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일종의 아바타 월드로 이해하면 쉽다. 일각에서는 2025년 315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 시장을 페이스북이 선점하면 이제까지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오늘날까지 이어온 광고 중심의 인터넷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일정 비용을 내고 광고 없는 인터넷 시대를 여느냐가 달린 싸움인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둘 중 어느 회사가 이기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년간 인터넷의 모습이 바뀔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