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트럼프 대통령은 패퇴하고 바이든 씨가 지난 1월 6일 미국 제 46대 대통령으로 확정되었다.
선거인투표 결과는 당초 예상되었던 그 대로 바이든 306표, 트럼프 232표로 바이든이 과반수 270표를 훌쩍 넘은 압도적인 표차였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6일의 상. 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바이든 씨를 물리치고 승자가 되는 대역전극(劇)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양원 합동회의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각 주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주 별로 하나하나 개봉(開封) 발표하면서 그 때마다 이의(異議) 여부를 물어 갔다. 만약 1인 이상의 이의가 있을 경우에는 그 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인정하는지 여부를 양원에서 각각 표결에 붙여 결정하게 되어있다.
양원 중 어느 쪽만 찬성해도 이의를 제기한 대로 무효화된다.
예를 들어 치열한 경합지구였던 펜실베이니아(20석)와 미시간(17석) 두 주의 표만 무효화되어도 바이든의 득표수는 37표가 줄어 269표로 과반수에서 한 표 모자라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대통령 당선자가 없다는 것으로 판정되고, 이에 따라 차기 대통령은 하원에서, 부통령은상원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지금 미국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이지만 이 선거를 위해서는 각 주에서 1명씩 만 표를 던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공화당 우세 주가 민주당 우세주보다 더 많기 때문에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변수(變數)가 있었다.
원래 각 주의 선거인단은 주지사가 11.3대선 결과에 따라 선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몇 몇 경합 주에서는 도지사가 선정한 선거인단과는 별도로 공화당 측이 부정선거를 빌미로 별도 선거인단을 구성, 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합동회의에 보고했다. 만약 양원 합동회의에서 주지사가 제출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기각하고, 공화당 측이 제출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정할 경우, 바이든 대신에 트럼프 측이 270표 이상을 걷어 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별도로 정.부통령선거를 양원에서 할 필요도 없고, 바로 트럼프가 당선인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어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경우는 상원에서 공화당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한 단결력을 유지해야만 가능했었다.
그러던 판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대 이변(異變)이 발생했다.
6일 하오 1시께 워싱턴 DC의 의회 의사당에 트럼프 지지를 주장하는 폭도들이 대거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는 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때마침 합동회의를 시작하고 있던 상.하 양원 의원들과 직원, 취재진들이 급히 지하실로 대피한 가운데 폭도들은 방 마다 돌아다니며 기물을 부스고, 서류들을 뒤죽박죽으로 흐트러뜨렸다.
문제는 이 폭도들의 대 난동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꾸미고, 독려했다는 설이 삽시간에 퍼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날 아침 지지 군중들에게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모두 의사당으로 돌진하라(Walk down to the Capitol)”고 말했고, 끝난 후에는 트위터로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나는 당신들을 사랑한다. 당신들은 특별한 존재(special ones)”라고 치하했다.
더욱이 의심을 짙게 하는 것은 도대체 아무리 경찰이 방심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많은 난동자들이 아무 저항도 없이 삽시간에 의사당 안으로 쳐들어갈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소수이기는 하나 경찰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난동자들과 그 다지 큰 마찰도 일어나지 않고, 형식적으로 저지하는 둥 마는 둥 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엄중한 현행범들을 단 한 사람도 체포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추측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뿐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적과 아군 모두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 만약 모두가 그가 말하는 ‘선거 도둑’을 적발하고 ‘사필귀정(事必歸正)’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상대방 쪽에 뿐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아군 쪽에 대해서도 이탈자가 없도록 경고하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오산(誤算)이었으며,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정적인치명타가 되었는지에 대해 그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이 폭거(暴擧)는 거의 전 국민적인 분노와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언론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악 중의 최악 대통령이라고 성토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공화당 자체가 극단적인 반 트럼프로 삽시간에 돌아선 사실이다.
그 결과는 바로 몇 시간 후인 밤 8시 양원 합동회의가 다시 의사당 안에서 열리자 명확히 드러났다.
펜스 부통령 사회로 각 주 별로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공개 보고되었다. 펜스 부통령은 한 주마다 보고가 끝나면 일일이 이의가 없는지 물었다. 펜실베이니아 주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공화당 측에서 수 명의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고 휴회를 선언했다. 즉시 상원과 하원이 별실에서 회의를 열고 이를 표결에 붙이도록 한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 양원 합동회의가 다시 열렸다.
하원측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인 만큼 당연히 상당한 표차로 이의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음을 보고했다. 그런데 다음으로 상원이 놀라운 보고를 했다. 상원 역시 이 이의를 기각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각 찬성수가 92표, 반대표가 7표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화당 상원의원 50명 중 7표만이 트럼프 대통령에 충성했고, 나머지는 모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몇 시간 전에 있은 트럼프 지지파의 의사당 난동 사건이 공화당 상원의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9일간의 임기 중에도 또 무슨 기괴(奇怪)한 행동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탄핵하거나 25차 수정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집무 불능을 이유로 권한을 박탈하고 펜스 부통령에게 1월20일까지 그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많은 지경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트럼프를 지지해 왔던 사람들(한국인들도 포함)도 이제는 인륜의 대원칙과 정통(正統)적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귀중하고도 엄중한 것인가를 깨닫고 하루 속히 개과천선(改過遷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