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바이든 여사,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이민자 손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제쏘마을 입구 이정표/laPresse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동북부에 있는 인구 500명의 제쏘라는 마을은 미국 대선 결과에 고무돼 한창 들떠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자 제쏘 마을 사람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 파티를 열었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될 질 바이든 여사의 뿌리가 이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제쏘 마을의 작은 박물관에는 질 바이든의 증조부와 조부가 미국으로 떠난 기록이 남아 있다. 1900년 5월 19일 그의 증조부가 식솔을 거느리고 나폴리에서 파트리아호라는 여객선을 타고 열흘이 걸려 미국 뉴저지주 엘리스섬에 도착했다는 기록이다. 질 바이든의 조부는 그때 두 살이었다. 당시는 먹고 살 길을 찾아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떠나던 시기였다.
질 바이든 여사의 할아버지가 2살(만 1세) 때 이탈리아에서 미국 뉴저지주로 건너왔다는 승선 기록.
미국 땅을 밟은 지 한달만에 질 바이든의 증조부 일가는 자코포(Giacoppo)라는 이탈리아 성(姓)을 제이콥스(Jacobs)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바꿨다. 질 바이든의 어릴 적 이름이 질 제이콥스였다. 20세기 초 제이콥스 일가는 뉴저지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제쏘마을에 질 바이든 여사가 미국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는 것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디스커버메시나
제쏘 마을에서 자코포라는 성을 쓰는 질 바이든의 먼 친척들은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우리 마을에 꼭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64세의 카테리나 자코포라는 여성은 “질 바이든이 오면 파스타와 미트볼을 준비하겠다”고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말했다.
조 바이든의 미국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제쏘마을 주민들이 축하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가운데 여성이 질 바이든 여사의 먼 친척인 카테리나 자코포다./유튜브
질 바이든은 종종 인터뷰에서 어릴 적 할머니가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인 남편 조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내 아일랜드계 표를 의식해 아일랜드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처럼 질 바이든 역시 ‘뿌리 마케팅’을 하는 셈이다.
제쏘마을이 속한 상위 행정구역인 메시나의 카테노 데 루카 시장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 당선인 부부가 이곳을 꼭 방문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질 바이든은 이탈리아 이민자들 가운데 성공한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는 최초의 이탈리아계 미국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

질 바이든의 할아버지 도메니코 자코포가 1900년 5월 미국으로 건너간 기록이 제쏘마을 내 박물관에 남아 있다./TGCOM24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약 17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들로는 조 디마지오(야구 선수), 프랭크 시나트라, 마돈나, 레이디 가가(이상 가수), 로버트 드 니로, 리어나도 디 캐프리오, 알 파치노(이상 배우) 등이 있다. 정관계에서는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등이 이탈리아계다. 학계에서는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와 현재 코로나 방역을 주도하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대표적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