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여성 모욕과 비하(卑下) 발언은 유명하다. 그는 이미 2015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여성 경쟁자였던 칼리 피오리나에 대해 “저 얼굴을 봐라. 누가 저 얼굴에 표를 주고 싶겠나”라고 말해 크게 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는 최근에는 그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여 법정 시비가 붙은 전직 포르노 배우 스테파니 클리포드에 대해 “말상(horse face)”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그런 여자와 내가 왜 관계했겠느냐는 뜻인 것 같다.
이를 받아 지난 18일자 AJC(애틀랜타저널콘스티튜션)의 시사 만화란에 마이크 루코비치는 다음과 같은 통렬한 만화 컷을 올렸다. 클리포드가 걸어오자 한 쪽에서 “이 ‘말상’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자세히 보니 큰 말 한마리가 있는데 그 엉덩이 부분이 트럼프 얼굴이었다. (남을 말상이라지만 스스로는 말 엉덩이 horse ass가 아니냐는 뜻)
이것이 개인 섹스 스캔들에 관한 에피소드이니 그저 웃고 넘어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가 세계의 전쟁과 평화를 가름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면 그냥 웃어 넘어가 질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fallen in love)”고 말했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정치 협상을 위한 고도의 기술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어림도 없는 얘기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다는 건지 알기나 하는가? 안다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고모부와 수도 없이 많은 최고위 간부들을 기관포로 가루로 만들고 이복형을 독살했으며, 수십만 명을 정치범 수용소에 불법 감금하고 갖은 고문과 학살을 자행하는 총 책임자인 피 묻은 그의 손을 붙들고 사랑에 빠졌다니 제 정신인가?
도대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북. 미 회담의 기본 설정 자체가 이미 산에 올라간 배나 진배없다. 출발점부터 틀린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이번 미. 북 간의 협상은 북한의 핵을 폐기하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북한의 핵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북한의 핵은 정의롭지 못한 사악한 자들의 손에 쥐었고 인류에 대량살상을 가져올 수 있는 커다란 해악(害惡)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가 북한 핵의 즉시 폐기를 명령했고, 여러 차례의 권고에도 북한이 불복종했기 때문에 경제적 제재조치까지 단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인데 무엇 때문에 이번에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에 대해 핵 포기를 하면 체제 보장이나 경제원조 같은 보상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가?
백보(百步)를 양보해서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하거나 경제원조를 해 줄 수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치자.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될 최후의 선이 있다.
즉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먼저 완료하는 것이 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양 쪽이 동시에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이쪽에서 먼저 보상을 할 테니 제발 핵을 포기해 달라는 것은 김정은에 완전 굴복하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또 핵 폐기 과정을 수 없이 쪼개어 제재도 단계적으로 이에 맞추어서 나누어 풀어가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미. 북 간 교섭 경위를 살펴보더라도 당초에는 옳은 길을 걸었다. 1년 이내에 북한이 핵 폐기를 완료하면 그 때 가서 체제 보장이나 경제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것이 어느 시점엔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시점부터- 급속히 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우선 북한이 핵 리스트(list)를 내 놓으면 이에 따라 미국이 종전선언 같은 것도 고려할 수 있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단순한 핵 리스트 제출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핵 리스트가 제출되어도 우선 그 내용이 정확한 것인지 현지 검증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누락이나 감추어진 다른 핵 시설과 무기는 없는지도 검증, 확인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북한이 내 놓겠다는 핵 리스트는 한낱 종이쪽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이나 미국이나 마치 핵 리스트 자체에 무슨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처럼 흥정하고 있다.
북한도 처음에는 핵 리스트 제출의 대가로 종전선언 쯤을 생각했던 것 같다.
북의 외무상은 “종전선언을 하루빨리 발표하는 것이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던 북한의 입장이 갑자기 달라졌다. 이제는 경제 제재 자체를 풀지 않으면 핵 리스트 신고도 없다는 초강경으로 표변(豹變)하고 말았다.
원래 경제 제재 해제는 핵을 완전 폐기한 후에나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는 핵 리스트 제출만으로도 해제해 달라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도 유럽 순방 길에서 가는 곳마다 경제 제재 우선 해제를 주장하다가 호된 핀잔만 받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사랑의 고백이 있은 후 김정은의 뱃심이 더 두터워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이 미국을 얕잡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꿰뚫어 보고 높은 가격 흥정으로 나선 것이다.
지금이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속내를 정확히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김정은에게는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애당초 김정은의 첫 째 목표는 미국의 급박한 선제공격이나 참수(斬首)작전을 모면하는 것이었다. 그 때 그는 상상을 초월한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그 목표는 지난 6.12 미. 북 싱가포르 회담으로 거의 100% 달성되었다.
다음 목표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협상을 무한대로 질질 끌어가면서 최단 시일 내에 경제 제재를 붕괴시키는 일이다. 이 분야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유용한 방조자(幇助者)가 되고 있다. 일단 경제 제재만 붕괴되면 그 이후로는 미국과 적당히 교섭을 끌고 가면서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굳혀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북한과의 평화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그날 까지 절대로 경제 제재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배를 산으로 올라가게 한 사람들은 모두 당장 물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