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교육연구소 대표 권순희 박사
P는 나보다 2년 연상이었다. 그녀는 미인이었고 명문대학을 나온 수재에 성격도 좋아 인기가 많은 전문 여성이었다. 내가 오랫 동안 근무한 교직을 그만두려고 머뭇 거릴 때 그녀는 명쾌하게 명퇴의 결정을 내리고 유학의 길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 후 나도 비슷한 이유로 직장을 퇴직했다. 그러나 P는 심하지 않았지만 갑상성의 문제로 당분간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의 안부를 늘 궁금해 했고 가끔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신기하게도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공무원 연금법 개정으로 비록 그녀가 2년 연상이었지만 교직 공무원 연금개정법 세대에 해당되었던 난 그녀의 공무원 연금 수당에 비해 나의 것이 삼분의 이 밖에 안된데 놀랐다. 그래서 퇴직후 나머지 인생을 나보다 연금도 3분의 일 더 받고 다른 혜택도 더 있던 그녀가 늘 부러웠다.
그녀는 늘 명랑했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 2년 전, 그녀는 독일에 살던 그녀의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 와서 요양원에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요양원에 계신 언니를 간호할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해야한다면서 친구들 모임에도 자주 빠졌다. 즉 친구들이나 과거 동료들이었던 사람들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아주 가까운 친구들도 그녀를 만날 수 없어서 아쉬워했지만 오십대에 중년들은 회사일과 가정사로 모두 바쁜 터라 그녀의 바쁜 일정을 이해했다. 그녀는 여러 형제들 중 막내로 나이 많은 언니들과 오빠들이 여럿 있어서 당연히 그녀의 조카들도 결혼하여 자녀들이 있는 어른이 되었다.
몇달 전에 P가 가장 친한 친구 K에게 전화했다. P는 장성한 조카가 있는데 “그 조카의 아이가 학교 영어 참고서를 추천받고 싶다”고 해서 전화했다. K는 여전히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에 당연히 요즈음 나오는 학생들의 영어책을 잘 알고 있으니까 참고서를 추천해 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K는 ‘직접 서점에 가서 둘러 보면 될 텐데’ 하면서 P 조카의 부탁이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참고서 몇 권을 우편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지난 주 P의 휴태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러나 P의 목소리가 아닌 그녀의 조카 목소리였다. P가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날 벼락에 천둥 치는 소리가 이런 것인가. P의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병원 영안실로 가 보았다. 그녀의 영정 사진이 있었고 가족들이 흐느껴 울고 있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해서 십대의 자녀들이 있는 P의 조카의 말에 의하면 P가 암이 있는 것을 따로 사는 가족은 몰랐다고 한다. 숨길 수 없을 만큼 퍼져서 나중엔 가족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친한 친구들에게는 알려야할 것 같아서 P의 조카는 P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 대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참고서 핑계를 대었다고 한다. 즉 마지막 목소리라도 들려주고 또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고 대화도 해 보라고 참고서 핑계로 만나도록 대화하도록 했단다. 그러나 간단한 전화상 대화로만 그쳤으니 아주 아쉬운 마지막이었다. P는 성격이 아주 깔끔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녀의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암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고 울면 어머니께서 맛있는 과일과 무척 부드러워진 말투와 태도로 대해 주셨기에 늘 아픈것을 광고했다. 형제가 많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었으니 아픈 것을 많이도 과장 광고했다.
그러나 암환자가 암의 상태를 숨기고 싶다기보다 성격에 따라 다르지 않나 생각된다. 지인의 학교에 2년째 치료받는 암 환자가 있는데 그녀는 광고하고 다닌다. 그래서 주위분들이 기도해 주고 또 용기도 주고 많은 관심을 가져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는 것 같다. 직장에도 가끔씩 나와서 동료들과 친밀하게 지낸다.
마지막을 너무나 외롭고 힘들게 가버린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주 먹먹하다.
권순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