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8~29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하나의 커다란 암운(暗雲)이 드리워지고 있다.
문재인. 트럼프 회담을 망칠 지도 모를 중대한 걸림돌이다.
그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 측의 끈질긴 대 북한 대화론 때문이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결정적으로 핵을 포기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 한 그들과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서로 굳게 지켜 왔다.
그러던 것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을 동결(凍結)하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새로운 양보안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 측으로서도 북한 핵이나 미사일을 현재 상태로 동결하는 데 그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일단 대화에 들어가면 북한을 설득해서 완전한 핵 포기까지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북한 유화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特補)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에 의해 가장 소상하게 설명되고 있다.
문 특보는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이 더 많은 실험을 하게 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갖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 때가 되면 군사행동이라는 파국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문 교수는 “(우리는) 좀 유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 미사일 실험을 하는 것은 자기들이 위협을 느껴서인데 우리가 한 미 군사훈련 규모를 조금 하향 조정하고 미국의 전략무기를 전진배치 하지 않으면 긴장이 완화되고 그러면 북한도 도발하지 않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얼빠진 대 북한관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고 싶다.
그는 국내외에서 거센 반론이 일자 “학자로서 얘기한 것뿐인데 이게 큰 문제가 되느냐? 나는 특보지만 내 역할은 대통령에게 자문을 주는 것뿐이다. 자문을 받고 안 받고는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시치미를 떼기까지 했다.
만약 문 대통령이 문 교수의 이 같은 의견을 모르고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임명한 것이라면 지금 당장 그를 해임해야 옳다. 청와대 측에서는 “그의 개인 의견일 뿐이며 엄중 경고를 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벌써 미국 정계에서는 “워싱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북 대화론자들은 북한이 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부터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체제에 대한 위협을 느껴서 핵을 갖는다는 것까지는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과 미국이 군사훈련 등을 중지하면 체제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니까 핵이나 미사일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것은 스스로 북한문제에 대한 무식을 폭로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의 현 집권세력은 그 동안에 누적된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악한 인권유린과 6.25 동족 대학살 등을 저지른 범죄집단이다. 그들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지옥과 같은 공포통치로 주민을 강압하면서 외세의 간섭을 무력으로 막아내는 길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과 미사일을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아니 “핵을 포기할래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그들은 북한 주민들의 노도(怒濤)와 같은 반란으로 모두 학살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북한에게 현 체제 유지를 보장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제라도 달려가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천륜을 어긴 국제적 범죄집단을 처벌하기는커녕 벗을 삼고 옹호해 주겠다니 스스로 정의를 저버리고 그들과 같은 족속으로 타락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북한은 파멸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그 동안 믿었던 중국도 미국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멈추고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북한에 어떤 이득을 안겨 줄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은 지금 북한에 대해 나라 전체가 격앙(激昻)되어 있다. 웜비어가 북한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추악하게 비뚤어진 얼굴로 울부짖으며 애소하는 장면을 보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가”라며 격노했다.
미국은 지난 21일 중국 외교수뇌들을 미국으로 불러 회담을 갖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일층 더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으로서도 만약 미국이 독자적으로 ‘세컨더리 제재’를 단행할 경우 중국이 입는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럴 때 한국 측이 제재 완화에 앞장서겠다는데 얼마나 북한이 고맙게 생각하겠는가?
북한의 계춘영 주 인도 대사는 인도 방송 인터뷰에서 “일정한 상황에서 우리는 핵과 미사일 실험 동결 조건을 논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측이 잠정적이든 항구적이든 대규모 군사훈련을 완전하게 중단하면 우리 또한 (핵. 미사일 실험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거의 같은 시간에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고 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이것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고 지금 당장 북한에게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도 말했듯이 북한은 지금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을 완성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와 있다. 북한이 약간만 더 시간을 벌어 ICBM을 완성하게 되면 앞서 문 특보가 말했듯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이 도달해 그 이후로는 군사적 해결책 밖에 아무런 옵션이 남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CBS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겉으로는 핵과 미사일로 ‘뻥’을 치지만 (안전 보장을) 간절히 바랄 수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粗雜)한 대 북한관을 거리낌 없이 피력했다. 북한과의 대화가 얼마나 무의미한가는 과거 20년의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딘가 한참 잘 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