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수도인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51번째 주(state)로 승격될 수 있을까. 22일 미 하원의 정부개혁·감독위원회에선 워싱턴 시의 주(州)승격 의제를 다루는 청문회가 열렸다. 그냥 DC라고도 불리는 워싱턴 시의 면적은 177㎢로, 서울(605㎢)의 30%밖에 안 된다. 만약 면적으로 주(州) 순위를 매기면 꼴찌다. 인구도 70만 명에 불과하고, 이 중 45.4%는 흑인(2019년 미 센서스 추정)이다.
◇워싱턴 DC 시민들, 1964년 대선서 처음 투표권 얻어
미 헌법은 주에 속하지 않고 미 의회가 배타적으로 관할하는 ‘연방 지역(federal district)’을 규정한다. 이에 따라 애초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주에 속했던 포토맥 강 주변이 ‘수도(capital district)’로 결정되고, 1791년 워싱턴 시가 이 목적으로 설립됐다. DC는 ‘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로, 당시 미국을 시적(詩的)으로 흔히 부르던 컬럼비아(컬럼버스의 여성명)에서 땄다. 의회 직할(直轄)이므로, 연방 상·하원에 따로 DC를 대표할 의원도 없다. 투표권 없는 1명의 하원 대의원(delegate)만 존재한다. 심지어 1964년 미 대선 이전에는 워싱턴 DC 주민들에겐 대선 투표권도 없었다. 흑인 인구가 늘자 1870년대 초 미 연방의회는 워싱턴 DC 거주 인구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존 타일러 모건은 당시 “쥐들을 없애려면 헛간을 불태워야 한다”며 “쥐는 흑인들이고, 헛간은 DC”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973년에 처음 구성된 시정부와 시의회도 배타적 관할권을 가진 연방 의회의 검토·승인 없이는 독자적으로 법안이나 예산을 통과할 수 없다.
◇85%의 DC 시민들은 ‘주 승격’ 원해
지난 30년간 미 하원에서 DC 대의원을 지낸 엘리노어 홈즈 노턴(83)은 22일 청문회에서 “미 연방 의회가 계속 DC 시민들을 민주적 절차에서 배제하고, 정당하게 선출된 시의회의 결정을 DC 시민들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고 뒤집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2016년 여론조사엔 시민의 85%가 주(州)로 승격되기를 원했다. 뮤리얼 바우저 DC 시장도 “DC가 (푸에르토리코처럼) 주가 아니라 ‘영토(territory)’로 분류되면서, 7억 달러의 코로나 경기진작 지원금을 덜 받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DC의 ‘주 승격’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6월에도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은 ‘DC의 주 승격’ 법안을 통과시켰다. 백악관·의회·내셔널 몰(National Mall) 등의 연방 건물 밀집 지역을 빼고, 주민 대부분이 사는 지역만 도려내 ‘워싱턴 더글러스 커먼웰스 주(State of Washington, Douglass Commonwealth)’로 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저명한 노예폐지론자이자 인종 평등을 외쳤던 사상가·웅변가인 프레데릭 더글러스(1818~1895)의 이름을 붙여 약자로선 기존과 같이 ‘워싱턴 DC 주’가 된다.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노예제 폐지론자이며, 인종 평등을 외쳤던 사상가이자 웅변가인 프레데릭 더글러스. 그 자신이 노예생활에서 탈출했으며, 북미 원주민과 흑인, 유럽계 백인의 혼혈이었다.
당시 이 법안은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무산됐다. 그러나 작년부터 더욱 거세진 흑인 인권 운동과 1월6일의 미 의회 난입 사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주 승격’ 지지 입장 등을 계기로, 이 ‘승격’ 목소리는 올해 새 힘을 얻었다. 트럼프 지지 폭도들이 연방의회를 습격했을 때, 워싱턴 DC는 주가 아니라서 방위군(national guard) 투입을 직접 요청할 수 없었다. 바우저 시장은 “당시 시 경찰력은 연방정부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주 승격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공화당은 ‘민주당 텃밭’을 주로 승격할 이유 없어
미 공화당이 주 승격을 반대하는 배경엔 ‘인종차별’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동한다. DC가 주가 될 경우 할당되는 연방 상원 2석·하원 1석은 인구 분포상 모두 민주당 차지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964년 DC 시민들의 대선 참여가 허용된 이래, 공화당 대선 후보가 DC에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다. 또 1980년 대선 이래, 모든 민주당 후보는 75% 이상의 득표율을 거뒀다. 또 워싱턴 DC가 주가 되면, 미 영토인 푸에르토리코도 들썩거릴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50대50인 상원 분포상, 공화당이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주 승격’을 동의할 까닭이 없다.
미 하원 민주당은 DC의 주 승격 법안을 올해 다시 통과시킬 예정이다. 민주당 측은 “민주주의를 행사하는 권리가 당파적 이유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법안의 일부 위헌성을 주장하며, “그렇게 DC 시민들이 의회에 자기 목소리가 반영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DC를 해체하고 인근 메릴랜드주에 편입되는 게 순서”라고 맞선다.
이철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