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 경제팀의 핵심은 '오바마 사단'과 '블랙록'이다. 정부 출범까지 50여일을 앞두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출신 인사들이 바이든 내각에 속속 기용되고 있다. 과거 미 정치권에서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요직을 점령해왔다. 그러나 새 정부의 경제팀에선 월스트리트 대표주자의 자리를 블랙록이 대신하고 있다.
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브라이언 디스(42) 블랙록 지속가능투자 책임자를 내정했으며 이번주 중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정치권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디스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부위원장과 예산관리국(OMB) 부국장을 지냈다.
재무부 2인자(부장관)에는 블랙록 최고경영자(CEO) 래리핑크의 비서실장 및 선임고문이었던 월리 아데예모(39)를 지명했다. 오바마재단 회장인 그는 오바마 정부 국제경제담당 부보좌관 출신이다. 블랙록의 싱크탱크인 블랙록투자연구소(BII) 의장이자 오바마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토머스 도닐런도 중앙정보국(CIA) 국장직을 제안받았지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워싱턴에선 골드만삭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트럼프가 발탁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초대 NEC 위원장인 게리 콘 모두 골드만삭스의 고위직 출신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로버트 루비니 재무장관과 조지 W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인 헨리 폴슨도 골드만삭스에 몸 담았다. 바이든 내각에서 발탁된 '골드만삭스 맨'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진보진영 가치 수용한 시장 전문가 군단 기용"
WSJ은 이번 인사를 계기로 골드만삭스가 백악관 요직의 등용문이라는 오랜 공식이 깨졌다고 했다. 특히 '블랙록 시대'의 도래는 특정 기업의 부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주자인 골드만삭스는 기업 인수합병(M&A)과 공격적 주식 투자로 최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 골드만삭스가 '탐욕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던 것도 이런 이유다.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각종 분배책과 부자증세 등을 내건 바이든 행정부와는 성향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1988년 설립된 블랙록은 지난 9월 기준 자산이 7조8000억달러(약 8570조원)에 달하는 대형 자산운용사다. 골드만삭스에 비해 정치권 진출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오바마 정부 출신 핵심 인사들을 영입하고 석탄산업 관련 투자를 중단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보 진영의 가치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
블랙록의 홈페이지에도 이러한 가치가 명시돼있다. 핑크 CEO는 이곳에 "투자는 개인의 수익 창출 외에 공동체적 가치도 인식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게재토록 했다. 올해 초에는 투자자들에게 "향후 블랙록의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기준은 환경 문제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공개서한도 보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정부와 시장을 모두 겪어본 인물을 등용해 시장의 불안과 국민적 거부감을 모두 완화했다고 평가했다. 금융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경기부양이 시급한 시장의 현실을 놓치지 않도록 진용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WSJ도 월가 출신을 대놓고 기피했던 오바마 행정부와 '탐욕스런 공존'이란 비난을 받았던 트럼프 행정부의 양극단을 고려한 인사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