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불복 할거냐?” 6차례 질문 쏟아지자 답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 주(州)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이 다음 달 14일 조 바이든 당선인을 선출하면 백악관을 떠날 것이란 뜻을 밝혔다. 미국 대선은 주별로 배정된 총 538명의 선거인단이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뽑으며, 이 투표가 다음 달 14일에 열린다. 트럼프가 여전히 부정선거임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퇴로를 마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추수감사절을 맞아 해외 주둔 미군들과 화상 간담회를 한 뒤, 대선 후 처음으로 백악관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만약 선거인단이 바이든 당선인을 선출해도 이 건물(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인가”란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물론 나는 떠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여섯 번이나 같은 질문이 거듭된 끝에 나온 답변이었다. 앞서 다섯 번의 질문에 트럼프는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처음 “선거인단이 12월 14일 바이든을 선출하면 그에게 승복할 것인가”란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엄청난 사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승복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그렇지만 승복할 것인가”라고 다시 묻자, 트럼프는 “엄청난 사기가 있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제3세계 국가 같다”고 했다.
“그래도 선거인단이 바이든을 선출하면 승복할 것인가”란 질문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만약 그들(선거인단)이 그런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섯 번째 같은 질문이 나왔을 때는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차기 대통령 취임식인) 1월 20일까지는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비록 엄청난 투표 사기가 있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했지만, 대선 결과 승복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고 평가했다.
전체 문답을 보면 트럼프는 법무팀이 펜실베이니아 등의 경합주에서 계속하고 있는 소송전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면서도, 바이든의 승리를 뒤집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취임식에 가는 것이 전통인데, 바이든의 취임식에 참석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아직은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기자가 “하지만 그가 취임할 것”이라고 덧붙이자 트럼프는 “나도 답은 안다. 솔직해지겠다. 나도 답은 알지만, 그저 아직은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바이든이 취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지난 23일 연방총무청 등이 바이든의 정권 인수에 협력할 수 있도록 승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포린폴리시는 트럼프 백악관이 지난 25일 국방부 장관·부장관에게 독립적 조언을 제공하는 국방부 정책자문위(Policy Board)에서 갑작스럽게 11명의 고위급 자문위원을 퇴출시켰다고 이날 보도했다. 퇴출된 자문위원 중엔 미 외교계의 거물인 헨리 키신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포함돼 있다. 이 결정에 대해 포린폴리시는 “떠나갈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정책 수립 기득권층 출신 인사들에게 쏘아붙인 작별 인사”라고 했고, CNN은 “트럼프 시대 말기의 또 다른 숙청”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대선 엿새 후인 지난 9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경질한 것을 시작으로 국방부·국토안보부 등의 고위 인사들을 줄줄이 해임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