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당선 공식확정] 바이든, 정권인수 절차 개시… 美연방총무청 ‘당선인’ 공식인정
연준 의장 시절 미 하원 의회에 출석한 재닛 옐런. 그는 금융위기 이후 연준 부의장과 의장을 거치며 경제 회복을 위한 미국과 세계의 양적완화 정책을 이끌었으며, 이번 코로나 침체 와중 재무장관에 앉으면 확장 재정정책을 펼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에 필요한 절차에 협력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 7일 대선 패배 보도가 나온 후 16일 만에 사실상 이를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나는 우리나라 최선의 이익을 위해 에밀리 (머피) GSA(연방총무청) 청장과 그녀의 팀이 (정권 인수) 초기 절차와 관련해 해야 할 일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머피 청장은 이날 정권 인수인계 절차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바이든 측에 보냈다. 연방총무청은 정권 인수를 위한 물적·인적 자원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트럼프가 이날 “소송은 강력하게 계속된다. 나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지만, 절차적으로 바이든은 공식적인 정권 인수를 시작하게 됐다.
조각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재닛 옐런(74)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으로 임명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1789년 미 재무부 설립 이래 231년 만에 첫 여성 경제 수장이 된다.
그는 1990년대 말 클린턴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오바마 정부 때인 2014년부터 트럼프 정부 초기인 2018년까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이었다. 한 사람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과 연준 의장, 재무장관 등 미 3대 경제 사령탑을 모두 섭렵하는 것은 전례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그는 미 경제 학자와 관료 인재풀 중 최고의 엘리트로 꼽힌다.
1946년 뉴욕 유대인 집안에서 출생한 그는 브라운대를 나와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나는 수학을 좋아하면서 사람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의 삶에 직결되고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드는 학문이 경제학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적 있다. 그의 남편은 2001년 ‘공생적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80) 조지타운대 교수이며, 외아들 로버트 애컬로프도 영국 워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옐런은 하버드대 조교수와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를 지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를 거쳐 연준에 입성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옐런은 공화당 사람이 아니다”라며 불만을 표시했고, 옐런은 “연준은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트럼프에 의해 옐런은 연임에 실패했지만, 바이든 시대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셈이다.
옐런은 바이든이 정치적으로 꺼내들기 좋은 ‘화합 카드’다. 지난 19일 바이든이 재무장관 후보에 대해 “민주당 내 중도와 진보를 모두 아우르는 인물”이라고 암시했을 때 세간에서 바로 ‘재닛 옐런’이란 이름이 튀어나왔을 정도로, 중도와 진보 진영 내에서 이견이 없는 인물이었다.
옐런이 연준 의장 인준 때 초당적 지지를 받았던 경력도 이번 인선에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바이든은 또 옐런의 친화력과 외교력이 향후 중국에 맞서 미국과 동맹 간 무역·통상 공조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 것으로 전해졌다. 10여 년 전 그가 연준 부의장일 때 잭슨홀 미팅(세계 연례 경제정책 토론회)을 하면, 각국 중앙은행장이나 재무장관들이 당시 의장인 벤 버냉키가 아닌 옐런 주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고 한다.
옐런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한 시장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 학파에 속한다. 연준 의장 시절, 미 경제가 금융 위기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한 그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보단 실업률을 잡아야 한다”며 매우 신중하게 금리 인상을 유도했다. 고용을 중시하는 그의 이력이 코로나 여파로 휘청이고 있는 미국 경제를 정상 궤도로 돌릴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지난 9월 WSJ 인터뷰에서 그는 “부양책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경기 회복이 불균등하게 이뤄질 것”이라며 강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옐런이 장관에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23일 뉴욕 증시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한편 바이든 당선인 측은 23일 인수위 웹사이트를 통해 미 언론들이 전날 내정됐다고 보도했던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국무부 장관에,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전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유엔 대사에 지명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