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美대선] 어떻게 승기 잡았나
미국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에 초점을 맞춰 치렀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진보 진영과 중도층은 물론, 보수 일각의 반(反)트럼프 정서를 결집하는 데 최적화된 후보였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년간 국정 수행 지지율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지층 결속만을 노린 편 가르기, 관료·전문가 무시, 동맹과의 갈등에 따른 미국의 입지 약화, 언제 어떻게 판을 뒤집을지 모르는 국정 불확실성 등이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경제 실적과 강력한 팬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시대를 견디기 힘들다’는 미국인이 많았다.
이런 분열의 시대에 바이든은 ‘미국의 정신을 복구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상호 존중과 통합으로 나라의 품격과 리더십을 되찾자는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4년 더 집권하면 미국에 증오와 갈등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 등은 이번 미 대선이 양당 후보의 정책·이념 경쟁보단 ‘도덕성·인격 대결’로 펼쳐진 이례적 선거였다고 분석했다. 바이든은 구체적 정책 공약 설계에선 취약했지만, 공감 능력과 배려 같은 미덕을 앞세웠다.
당초 바이든은 고령에 ‘옛날 정치인’이란 인식이 강한 데다, 카리스마가 부족해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의구심을 낳았다. 그러나 아웃사이더 대통령이 일으킨 4년의 혼란 속에선 바이든의 노장(老將) 이미지가 장점이 됐다. 국민에게 ‘바이든이 최선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라가 뒤집힐 일은 없겠다’는 느낌을 줬다는 것이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올 초 민주당에선 ‘트럼프 저격수’를 자임한 20여 명의 경선 후보가 난립했고, 바이든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 3월 코로나가 미국에 본격 상륙해 큰 피해를 입자, 민주당은 ‘안정’을 내세운 바이든을 중심으로 경선판을 빠르게 정리했다. 바이든은 마스크 착용을 정치화하고 코로나의 현실을 부정한 트럼프와 달리, 전문가의 말을 따르고 방역 지침을 지켰다.
5월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찰에게 목 눌려 죽은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시위가 전국에 번진 것도 바이든에겐 반사이익이 됐다. 오바마 정권 때 8년간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은 ‘오바마 향수’에 젖은 흑인 유권자들을 위안하는 구심점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집권 지역의 폭동을 비난하며 시위 강경 진압을 지시하자, 바이든은 “난 민주당 주와 공화당 주를 반목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민주당 경선 당시 TV토론에 함께 나선 조 바이든(오른쪽)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바이든은 4년 전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샌더스의 빠른 지지를 얻어냈다.
바이든은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클린턴 오답 노트’에 가까운 전략을 짰다. 특히 클린턴이 놓친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저학력 노동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했다. 클린턴이 경선 경쟁자였던 좌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그 지지층의 온전한 지원을 얻지 못한 것과 달리, 바이든은 일찍부터 샌더스 진영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바이든은 2016년 클린턴에 비해 ‘비호감도’도 현저히 낮은 후보였다.
또 바이든은 공화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의정 경력과 중도 성향을 내세워, 트럼프에 염증을 느낀 보수 유권자 일부를 흡수하는 데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