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미국에서 흑인 시위대가 워싱턴의 백악관으로 육박했을 때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잠시 지하 비상 대피실로 피신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이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생고집으로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나는 때마침 지하 대피실을 시찰했을 뿐이다.” 이 말을 듣고 온 세계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치한 오기에 대해 또 한번 냉소(冷笑)를 금치 못했다.
누가 보아도 트럼프는 쓸 데 없는 변명을 한 것이다. 도대체 이 세상에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했는가?
다음 날 정치 만평가 마이크 루코비치(Mike Luckovich)는 이를 비꼬는 만화를 신문에 게재했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숨어 있다. 유리 창 밖으로는 흑인 시위대들이 곧 실내에 쳐들어올 기세이다. 트럼프 왈(曰) “지금은 책상 밑을 시찰할 시간이여-(under the desk inspection time…)”
지금 세계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관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미국에 엄청난 코로나 재앙을 가져 오고도 사과의 말 한 마디 없이 그 직을 유지하고 있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함이다.
그는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는 지금 확진 환자가 15명뿐인데 곧 0 명이 될 것” 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전 세계에서 미국이 유달리 가장 많은 확진 환자를 갖고 있다. 곧 2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다. 사망자도 11만 명을 넘었다.
이 숫자는 세계의 여러 나라와 비교할 때, 말도 안 되는 파멸 상태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으뜸으로 코로나 왕국 행세를 하고 있다. 2위인 브라질의 60만 명의 3배를 넘는다. 미국의 인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단독 미국만이 이 처럼 단시일 내에 엄청난 코로나 확진자를 갖게 되었는가?
이것은 순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무지(無智)와 지나친 낙관론이 빚은 결과이다.
그는 미국에 확진 환자가 15명뿐이라고 말한 후 아무런 방역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5명이라는 숫자도 아무런 근거나 의미가 없었다. 왜냐 하면 그 때까지 미국에는 검진 키트(kit)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 때 이미 전국적으로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의 환자가 있었는지 전혀 모르면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봇물처럼 불어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참으로 무책임한 말을 많이 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소독제를 마시면 체내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 죽는다”,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특효가 있다”는 등의 망언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책임감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부끄러워서라도 그 자리에서 무조건 물러났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실책들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염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이 이처럼 세계에서 으뜸가는 코로나 피해국가가 된 것은 자기 책임이 아니고 바이러스 발생국인 중국의 책임이라면서 중국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중국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염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한 때 코로나 바이러스로 뒤덮이듯 하다가도 슬기롭게 이를 통제하고 진화(鎭火)하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발생국이라는 중국도 14억의 인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현재 확진환자가 8만 3천 명 정도로 줄었다. 그런데 3억 인구 뿐인 미국이 중국의 24 배나 되는 확진자를 갖고 있는 것이 중국의 책임이라고 우기는 것은 너무나 염치(廉恥)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막무가내(莫無可奈)이다.
오는 11월3일의 대통령 재선을 노리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금의 최악의 코로나바이러스 국가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때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미국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명을 이유 있다고 보고 그를 면책해 주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중국과는 그 동안 무역 관계 패권 다툼으로 세계 경제가 크게 흔들릴 기미가 점점 더 짙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은 이미 EU 각국과도 경제문제로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반세기 이상 가장 긴밀한 군사동맹국 관계를 유지해 온 한국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고압적 자세는 매우 부적절하다. 한국도 응분의 경제적 부담을 짊어질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적 대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동맹관계는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미국 입장으로서는“돈을 더 내지 않으면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공갈할 처지가 못된다는 것은 세 살 먹은 코흘리개라도 알만한 일이 아닌가?
그런 가운데 흑인 압살(壓殺)사건으로 미국 전토에 퍼진 반정부 시위 사태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없는 실책을 연속 저지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벌어진 흑인들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대해 처음부터 극도의 분노를 표시하면서 연방군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철저히 진압해야 할 테러조직의 행위라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백인들의 결속을 더욱 강화할 수 있고 이것이 재선 승리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은 지금 비참할 정도로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과거의 대통령들은 이번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우선 압사당한 흑인에 대한 애도의 표시부터 제일 먼저 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애도의 말이나, 그를 압살한 경관들에 대한 질책과 유족들에 대한 진정 어린 조문(弔問)같은 말은 입에 벙끗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부터 따뜻한 마음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면 지나친 데모 폭력이나 점포 약탈 같은 불미스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거나, 극소수에 그쳤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이런 점을 깨닫고 그의 재선을 걱정하기에 앞서 진정으로 미국에 부과된 세계리더십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