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은 2006년 여성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로 구분되는 소수 인종 여성과 아동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피해자들끼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하며 용기를 내어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안됐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인 와인스틴 컴퍼니의 하비 와인스틴의 수십 년에 걸친 성추행 사실이 뉴욕 타임스에 의해 폭로되면서 미투 운동에 불이 붙었다. 이후 50명이 넘는 여성들이 피해 증언을 하며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점차 연예계, 재계, 정치계 등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서울 북부지검 검사 시절이던 2010년 검찰 상관한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 미투 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뒤이어 크고 작은 미투 운동이 터지며 발원지였던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혼란을 겪었으나 당시 애틀랜타의 한인 사회는 조용했던 걸로 알려졌다. 12만 한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곳이 청정지역이기 때문이었을까?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기자로 활동하면서 몇 차례 관련 제보를 들었었다. 이를 문제 삼으려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일궈온 이민자들의 작은 사회에는 “그 정도 허물은 서로 덮어주자”는 의리가 존재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한 이민자들 사이에 형성된 강력한 연대가 잘못과 잘못이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듯했다. 애틀랜타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이곳에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에 관련된 추행및 희롱은 엄연히 존재해 왔다.
3년 전 애틀랜타의 한 단체에서 활동했던 J 씨는 당시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던 한 남성에게서 집요하고 끈질긴 문자 세례를 받았다. 한국에 가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J 씨의 귀여운 외모를 칭찬하던 그 남성은 J 씨가 당시 활동하던 단체 카톡방에 그 남성이 보낸 모든 메시지를 캡쳐하여 폭로하고 나서야 연락을 끊었다. 이미 미국에서 미투가 활발하던 때였다. 어릴 때 이민을 와서 그 때 막 한인사회와 접촉하기 시작했던 J 씨는 너무나 황당했던 것은 주변사람 모두가 폭로한 본인를 비난했다는 사실이었다고 전했다.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는 J 씨에게 밤 늦게 문자를 보내고 함께 하는 회의 자리에서 끈적한 스킨십을 시도하던 그 남성은 아무의 비난도 받지 않았고 결국 J씨만 상처 받은 채로 관련 활동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J 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앞으로 계속 이곳에서 활동하려면 작은 일은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며 만류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작은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 때문에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그동안 조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학원에서 껴안는 희롱을 당했다는 한 학부형이 있었고, 영업시간이 끝난 후에 환자를 불러 마사지 베드에 눕히고 올라타서 아픈 부위를 만져 주겠다는 원장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또 다른 제보자 B 씨는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불렀는데 가슴이 파인 그 옷을 보고 관계자가 “만져보고 싶게 생겼다”는 언행을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 당사자에게 물으니 오히려 제보자 B 씨가 평소 행실이 부도덕하다며 별것도 아닌 일을 신문사 기자에게 말했다며 분노를 표해 기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한인사회의 성추행, 성희롱 문제는 모두가 눈감아 주며 ‘별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린 듯 하다.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아껴주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잘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작은 이민사회에서 소문이 빠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이유로 묵인되서는 안 되는 문제다.
기자는 더 건강한 이민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 몇 주간 피해자들의 제보를 수집하고 이를 기사화하여 그동안 서로 암암리에 봐주었던 그 ‘고리’를 철폐하고자 한다. 이전에 받은 제보 역시 상세히 알릴 예정이다. 그동안 말 못 할 고민을 해 온 피해자가 있다면 즉각 이메일을 통해 연락해 주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용기’가 오랜 시간 굳어져 온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