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회원국 제품에 75억불 징벌적 관세 부과
매년 11월말이면 프랑스 동부 일대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와인 출시를 앞두고 분주하다. 셋째주 목요일에 맞춰 전 세계에서 보졸레 누보를 동시에 내놓기 위해서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보졸레’ 마을에서 지역 특산 품종 포도인 ‘가메(Gamay)’로 만든 햇 와인이다. 가을에 수확한 햅쌀로 밥을 짓듯 이 지역 사람들은 햇 포도로 술을 담궈 마신다. 이 와인은 장기 보관과 숙성이 어려워 동네에서나 마시는 저가 와인이었는데, 전 세계에서 한날 한시에 출시하는 색다른 마케팅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2015년을 기점으로 매년 수출량이 두자리씩 늘고 있다. 일본은 보졸레 누보 전체 생산량의 25%를 쓸어가는 제 2의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영국과 중국, 홍콩에서의 수요 역시 매년 상승세다. 보졸레 생산자들은 올해도 미국을 중심으로 작년보다 수출량이 늘어나기를 기대했다. 지난해 보졸레 누보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힐 만큼 주질이 좋았던데다, 미국 경기까지 호황이라 이 기대는 곧 현실이 될 법했다. 그러나 CNBC와 와인스펙테이터 같은 언론들은 ‘기대와 달리 보졸레 생산자들이 올해 미국 시장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21일 일제히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19일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 제품에 75억달러에 달하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보졸레 누보를 포함한 프랑스산 와인은 물론 프랑스산 치즈, 영국의 위스키와 사탕, 독일의 커피,과자,와플, 스페인의 올리브와 올리브유 같은 EU산 식품들은 무려 25%라는 높은 관세를 두드려 맞았다. 미국 수입사 입장에서는 100달러를 주고 들여오던 제품을 하룻밤새 125달러를 주고 사야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시중에 팔리는 일반 와인은 수확한 포도를 양조해 최소 2-3년은 숙성해서 내놓는 경우가 많다. 환율 변동이나 관세율 조정처럼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온도가 일정한 창고에서 더 보관하다 팔면 그만이다. 그러나 보졸레 누보는 매해 9월에 수확한 포도를 4-6주 정도 짧은 숙성 과정을 거쳐 11월에 전 세계로 보내는 와인이라 장기간 저장하기가 마땅치 않다. 태생적으로 숙성을 거의 시키지 않는 와인이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과일향이 사라지고 음용성이 떨어지면서 상품 가치가 곤두박질 치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보졸레 누보 와인 생산자들은 치솟은 관세를 직접 물어가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올해 보졸레 누보 와인을 미국 시장에 내놓고 있다. 최대 시장의 거래선을 유지하고, 소비자들이 보졸레 누보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게끔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어차피 보관을 할 수도 없으니 수출량을 유지하면서, 내년 포도 농사 자금이라도 마련하려면 오른 관세를 내더라도 만든 와인은 파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비드 라티니에 국제보졸레협회 부사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소비자들은 10-15달러면 올해 보졸레 누보 1병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예년과 비슷한 값"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는 보졸레 누보 와인 생산자들이 가슴을 쳤지만, 내년에는 미국 와인 생산자들 눈에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EU 역시 미국 와인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국 와인업계는 2018 년 기준 4 억 6700 만 달러를 EU 시장에 수출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리옹에서 보졸레 누보 출시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