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산국
시인: 理石 육근철
노오란
향기에 취해
혼자 웃는
돌거북
어느 햇살 좋은 날, 가을 금화(金花)에게 ‘소나기’의 산골 소년 마냥 꽃 구경 오라 문자를 보낸다. ...... 모든 꽃들이 짙은 향기로 소리치는 이 계절, 조선의 여인같이 작달만한 가을꽃. 쑥부쟁이, 산국, 감국, 개미취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쑥일까? 국화일까? 예초기 회전날개 소리에 오들오들 떨던 풀 닮은 꽃 산국. 용케도 살아 가을까지 왔다. 마당귀 밤하늘 은하수이듯 쏟아져 내린 쑥부쟁이, 산국의 무리는 하루종일 내 눈길을 잡아끈다. 그래서 시월은 아예 문을 열어 놓고 산다. 내 고향 모래재 언덕에 지천으로 피던 꽃, 지금은 봉곡리 우물가 내 곁에서 나도 꽃이야 꽃. 나 좀 봐줘! 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산국의 향기도 빛깔도 길고 긴 봄 여름을 땀 흘려 가꾸어야만 곱고 아름답게 피는 것이라고. 고통 끝의 단맛을 나에게 일러주고 있다.
추우(秋雨)//산국 향/빗방울 튀듯/가을비/발목 적셔
시월의 끝자락 비가 내린다. 윤초시네 증손녀에게 한 아름 안겨준 산국이 빗방울 소리로 향기를 토한다. 가을비는 우산을 써도 들이쳐 발목을 적신다. 이 비가 그치면 추워지리라. 향기는 꽃의 말이다. 꽃은 향기로 말을 한다. 난이나 국화과 식물들은 띄엄띄엄 불연속적으로 향기를 낸다. 연속적으로 향기를 내는 식물들은 우리 코가 무뎌져 계속해서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뜰에다 난초와 국화를 심고 문향(聞香)이라 하여 그 꽃이 하는 말을 향기를 통하여 들으려 했던 것이다. 향기는 파동이다. 꽃의 언어가 향파(香波)로 파문져 관찰자에게 전파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꽃에서 향기가 나올 때는 파동으로 내지 않고 입자 형태로 불연속적인 향자(香子)를 낸다. 마치 삶의 고통 속에 그 무게와 깊이가 견성(見性)을 일으키듯 향기도 이중성(二重性,duality)을 띄고 있다는 사실 앞에 이 가을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