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밤
시인: 理石 육근철
저 능선
알고 있을까
비우고
채우는 뜻
달밤은 그리움이다.
어느 겨울날 새벽, 밖에 나가보니 장독대 앞에 서 계신 할머니. 흰 사발 정화수 앞에 허리 굽혀 빌고 있었다. 정화수 백자 사발 안에는 반달이 쏟아져 빛나고 있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꾀꼬리봉 능선 위에 떠있는 둥근달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할머니는 자신을 다 비우고 오직 사랑하는 자손만을 위해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그 할머니의 마음 그림자로 내가 지금 올곧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신의 추억 하나//농익은 속살 속 살구씨는 눈을 맞추자 막가파이다./그런데 단내 나는 참외 노란 속 씨는 이빨을 요리조리 피하여 주머니, 짧은 대롱, 긴 대롱을 지나는 삶을 살아간다. 재수가 좋으면 개똥참외로 세상과 또 입을 맞춘다./나는 살구씨인가? 참외씨인가? 다 스타일이며 추억일 뿐이다.
앞의 “달밤” 넉줄시를 페이스북에서 읽고 구중회 시인이 보내온 화답 시다. 내 “저 능선은 알고 있을까”에 대한 구 시인의 철학적 화답일 것이다. 이렇듯 서로 시심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농익은 사색적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것, 그것이 시인들의 멋이며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반달//얼마나/그리웠으면/반쪽이/되었을까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반쪽 얼굴이 되었을까? 반쪽이 될 정도로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이 복잡하고 바삐 돌아가는 세상, 밤하늘의 반달을 보고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복을 비는 마음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