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만월(滿月)
시인: 理石 육근철
여보게
난 잎에 앉아
무얼 그리
보시나
휘어진 듯 곧은 잎새 하얀 낮달이 웃고 있다. 그를 보면 저절로 빙그레 미소를 머금게 된다. 난 기르기 사십여 년, 아름답다 생각하니 잎 선이 보였고, 이름을 알고 나니 꽃 모양이 보였다. 게다가 띄엄띄엄 나오는 난 향기를 듣고 나니 양자역학적 세계상이 깨달아지는 것 같았다.
그를 대할 때마다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듯 싱그러웠고, 선비의 심성으로 살아가고자 옷깃을 여미었다. 한자로 난초 난(蘭)자를 분해해 보면 풀초(艹) 변에 문 문(門)자와 동녘 동(東)자로 되어 있다. 즉, 동쪽으로 나 있는 문가에 살고 있는 풀이 바로 난이라는 것이다. 해 뜨는 대문가 한 포기 난이 출퇴근하는 나를 향해 “도포 자락 휘날리며 오는 주인아! 오늘 너 얼마나 푸르렀느냐?” 묻고 또 묻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내가 난을 기른 것이 아니라 난이 날 기른 것이다. 그 난 잎에 낮달이 앉아 날 보고 또 묻는다.
그림자//그대여/듣지 못했나/지창에 핀/난 향기
난을 기른다는 것은 정신적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길이다. 난을 통하여, 난과 함께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난 잎도, 달도 모두 곡선이다. 사람이 만들어 낸 구조물은 대부분이 직선 형태이나 신이 만들어낸 자연은 거의 모두가 곡선이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직선의 숲에 사는 것이나 자연 속에 산다는 것은 곡선의 숲에 사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곡선의 형태에서 더 안정감을 갖는다고 한다. 그것은 보고(seeing), 이미지화(imaging)하고, 그리(drawing)는 일련의 사고과정에서 마음 거울에 맺힌 상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리라. 지창(紙窓)에 핀 난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마음 거울, 그 마음 거울에 비친 난 그림자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더욱더 성찰하는 자세로 사물을 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