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 G7 정상회담이 열린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아베 총리와 두 차례 만나 양국 무역 협정에 대한 합의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중국과의 무역 분쟁 이후 수출 부진을 겪고 있던 미국산 잉여 옥수수를 수억 달러 사들이는 등 농산물 시장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을 비롯한 회담의 성과를 강조한 것이다. 양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부과되는 38.5%의 관세도 단계적으로 인하해 2033년까지 9%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 일각에선 이날 미·일 무역 합의에 대해 ‘아베의 퍼주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초 받아낼 카드였던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인하 조치는 유보됐기 떄문이다. 지지통신은 "미국산 옥수수 250만톤을 추가 수입하면, 일본 국내 농가에 시련이 된다"라고 했다. 도쿄신문 역시 "일본이 미국과 후퇴된 내용의 합의를 서둘러 했다"라고 비판했다. NHK는 "중국이 안 사는 옥수수, 일본이 삽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통령 선거 재선을 위해 미국 농민층의 표심을 중요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배려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 농축산 품의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선의 불안 요소다. 지난해 미국 농축산품의 중국 수출은 2017년 대비 53% 줄어들었고, 올해 1~6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2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에 일본이 대량 사들이기로 한 옥수수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격전지로 전망되는 아이오와 등에서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이번 미·일 무역 합의는 ‘전략적 무승부’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마이니치신문은 "미·일 무역 합의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물밑 합의 내용은 트럼프의 어필과는 정반대로 무승부에 가깝다"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세 인하는 미국이 탈퇴한 종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의 조건을 답습한 것이라서 일본 협상 관계자들 사이에서 ‘안도감’이 퍼졌다"고 했다. 아사히신문 역시 "미국산 농산물 관세 인하 부분은 일본 측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던 TPP 수준에서 수습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또 이번 미·일 합의가 양국의 잇속을 모두 충족시키는 ‘속도전’이었다고 분석했다. 통상 수년이 걸리는 국가 간 무역협상이 불과 1년여만에 윤곽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내년 대선을 노리고 무역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조바심과, 협상 장기화에 따른 ‘트럼프 리스크’를 경계하는 일본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협상이 길어지면 미국 측에서 통상 문제를 미·일 안전보장조약 등 안보 문제와 연결시켜 과도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있었는데, 조기에 대략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면서 이를 해소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얻어낸 것도 많다. 미국은 일본산 소고기에 대해 3000톤 가량의 무관세 쿼터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또 미국 측이 계속해서 관세 인하 등을 요구했던 버터와 탈지분유 등 유제품에 대한 수입품에 대해선 신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를 이유로 일본 자동차에 대해 최대 25%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현상 유지’만으로도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이 불확실한 국제 정세에서 ‘확실한 우군’을 만들기 위해 손해보는 합의를 했다는 분석도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이 도발을 강화하고 있는데 더해, 한·일 관계 악화로 동아시아 안보정세가 복잡해지고 있어 미국과의 밀월관계 유지에 일본 외교가 부심하고 있다"고 했다. 도쿄신문은 "안전보장을 둘러싼 한ㆍ일의 대립, 격화되는 미ㆍ중 무역마찰 등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더 긴밀한 미ㆍ일 관계를 연출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했다.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가 25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