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백일홍
시인: 理石 육근철
오늘도
보고 싶다고
파르르
떠는 하늘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묻어 둔 사랑이 있을 법하다. 한여름 능소화 꽃이 지고 나면 여름꽃은 특별히 볼 꽃이 없다. 그러나 폭염의 계절에 진분홍 꽃 한 아름 피어 배시시 웃고 있는 나무가 있다. 바로 배롱나무, 간지럼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백일홍 나무다. 조선의 선비들은 백일홍 나무를 앞뜰에 심지 않고 뒤뜰에 심었다고 한다.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면 슬그머니 다가가 배롱나무의 표피를 애무하듯 어루만졌단다. 마치 애인을 애무라도 하는 것처럼. 그럴 때면 나무는 애교스런 몸짓인지 간지럼을 타는 듯 가지 끝이 파르르 떨렸다 한다. 그래서 간지럼 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옛날에는 백일홍 나무가 귀하여 궁궐이나 절, 사대부 집에서나 볼 수 있던 나무였다.
그리움//사랑아/짧은 사랑아/단풍 진/배롱나무
열흘 이상 피는 꽃이 드문데 백일이나 가는 꽃이 있다. 백일홍 꽃은 여름 내내 진분홍으로 피어서 아름답다. 서양의 배롱나무는 꺽다리처럼 키만 삐쭉 커서 아롱다롱한 맛이 떨어지나 우리의 배롱나무는 손질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산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자란다. 그 둥근 가지 끝에 진분홍으로 빨갛게 피어오른 백일홍 꽃은 미의 여신 인양 아름답다. 전라도 담양의 명옥헌을 8월에 가면 조선 시대 백일홍정원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배롱나무는 가장 늦게 잎이 나고 가장 빨리 낙엽이 지는 특징이 있다. 대추나무 잎 날 때 봄날은 간다는데, 백일홍 나무의 새싹이 바로 대추나무 잎 나는 시기와 같다. 그리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단풍이 지기 시작하여 일 년 중 거의 반을 잎도 없이 사는 서글픈 나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나면 그리움이 사무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묘지 옆에 배롱나무를 심어 놓고 생전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 무더운 여름 창밖의 배롱나무 매력에 빠져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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