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주와 함께 전국서 유일하게 친권, 양육권 허용
강간으로 임신된 여성도 낙태 금지법 입안으로 논란 중
보수도 지나치면 건전한 가치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자들을 자처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의해 외면당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까지 나서서 얼마 전에 ‘지나치다’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 성폭력에 의한 낙태까지 금지한 앨라배마주의 신규 낙태 금지 법에 이어 성폭력 용의자에게서 친권을 박탈하지 않고 있는 기존 법안도 새삼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지(WP)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해 북부 앨라배의 가족 복지국을 방문한 한 젊은 여성의 하소연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여성은 15세의 나이에 의붓삼촌에게 성폭력을 당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이 여성과 상담한 포사 셰퍼드씨는 “그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마약 혐의의 유죄 평결 이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삼촌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태어난 피해 여성의 아이의 삶에 관여하기를 원했다. 더욱 쉽게 말하면 그는 그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한 것이다. 셰퍼드씨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며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미친 소리였다. 그러나 앨라배마주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앨라배마주는 강간이나 근친 상간으로 임신이 돼 태어난 아이들의 친권을 용의자에게 허용하고 있는 전국에서 2개 지역 중 한 곳이다. 나머지 다른 한 곳은 미네소타주이다. 다른 대다수 주들은 2015년 의회에서 통과된 ‘성폭행 생존 아동 양육권 법(Rape Survivor Child Custody Act)’에 따라 성폭행으로 아이를 임신했다는 “명확하고 확실한 증거”가 있을 경우 법원이 성폭행범의 친권을 박탈하도록 허용하고 피해자에게 구호 기금을 제공하도록 하는 법을 채택하고 있다.
앨라배마주 의회는 지난달 성폭행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는 사실상 낙태 전면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며 케이 아이비 주지사의 서명으로 입안됐다. 당시 성폭행범의 친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앨라배마 주의회는 그러한 조항을 제외하고, 자녀를 성폭행한 경우에 한해서 친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만 포함시켰다.
낙태 권리 지지자들은 성폭행 피해자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자녀를 낳고 자신을 공격한 성폭행범과 아이를 공동 양육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셰퍼드는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며 “앨라배마는 어떻게 이러한 법을 빠뜨릴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주 의회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비비안 피겨스 앨라배마주 상원 의원은 “성폭행범 친권 허용 법안은 비열하고, 불공정하며 어머니들과 아이들에게 위험하기까지 하다”면서 “내년 앨라배마주 정기 회기에서 성폭행범의 친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앨라배마에 거주하는 여성 제시카 스톨링씨는 13살 무렵부터 같은 집에서 사는 삼촌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3명의 아이를 낳았다. 둘은 20살 때 잠시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불과 몇 개월만에 이혼했다. 현재 스톨링은 30세가 되었으나 아직도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법원이 아이 아버지의 친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스톨링씨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자신을 강간한 남성과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 스톨링씨는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하게 보는 낙태 금지론자이나 강간범에게서 친권을 말소해야한다는 데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톨링씨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강간범과 평생을 마주쳐야 한다면 강간으로 임신당한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부추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15일 케이 아이비 앨라배마주 주지사(공화당)는 하루 전날 주상원에서 찬성 25표, 반대 6표로 통과시킨 낙태금지법에 서명함으로써 법안이 입안됐다. 이 법안은 임신한 여성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의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앨라배마주 상원은 14일 찬성 25표 반대 6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어기고 낙태를 시술할 경우 중범죄자로 간주돼 최고 무기역형에 처해지는 등 이 법안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낙태 금지 법안이다. 법안에 따르면 낙태를 한 임신부는 처벌받지 않으며, 낙태 시술을 한 의사만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안은 낙태에 대해 홀로코스트와 같이 역사상 가장 잔혹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가진 여성은 낙태할 수 있다는 항목을 담은 수정안을 냈지만, 21대 11로 부결됐다.
결국 이 법안은 임신 개월차에 상관없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낙태를 금지시키는 내용으로 아이비 주지사에게 송부됐으며 5 15일 아이비 주지사의 서명으로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에서는 낙태 금지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대표적 기준이다. 2020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공화당 소속 주지사를 둔 주별로 서로 다른 낙태법안이 나오면서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는 분위기다.
낙태 제한 범위를 둘러싸고 전국 곳곳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5월 15일 앨라배마주 초강경 낙태 금지 법안에 아이비 주지사가 서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