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한국어 교육이 재미한인 차세대 위주에서 벗어나 미국 현지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세계 교육의 중심지인 미국내에서의 한국어 교육 열기를 취재해 보도하고 한국어가 미국 공립학교내 커리큘럼 시스템으로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사항과 여건들을 3회에 걸쳐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국인들 K팝-드라마 등 한국문화 심취...배우자-친구로 인한 관심도
한국어 교재 및 수업관련 문의 연이어...문법, 노래, 놀이 등으로 교습
미국내 한국학교는 설립 초기에는 한인2세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지만 이제는 이민3세와 현지 미국인들에게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애틀랜타한국학교(교장 송미령)는 동남부 소재 70여개의 한국학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그리 크지 않았던 지난 1981년 당시 한인 2세들의 한국어 교육을 염려하던 당시의 한인회장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이 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1982년 비영리단체로 등록했고 현재 40여명의 교사들이 31학급 380여명 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더불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그 뿌리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학생 연령은 만 4세부터 성인반까지 있으며 총 11단계의 수업 레벨이 있다. 수업은 매주 토요일 9시부터 12시 15분까지 하며, 이 중 45분은 특활시간으로 동요, 국악놀이, 태권도, 서예, 인물 역사, 이민 역사 등 한국어 외에 한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추석, 설날잔치 등을 통해 학생들이 전통 명절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이 밖에 상상나라, 골든벨, 동요대회, 낱말대회, 동화대회, 말하기대회, 글짓기대회, SAT 한국어 모의고사 등의 다양한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2009년 조지아 주정부로부터 특수교육기관 (Educational Agency with Special Purposes)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취득한 한국어 점수를 조지아 주내에 소속된 학교에 제출하면 이를 제2외국어 학점(한국어)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학교 설립 목적은 한인이민 2세를 위한 한국어 교육이지만 지금은 외국인에게까지 한국을 가르치는 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애틀랜타한국학교는 지난 1992년부터 성인반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는 외국인들이 많다. 동남부한국학교협의회 선우인호 회장은 “초기에는 한국에 출장가는 주민들 위주로 진행돼 단기 코스로 간단한 회화 등을 가르쳤다”고 전하고 “혹은 자녀를 입양한 미국부모들의 배려로 한국에서 입양된 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우러온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점차로 다인종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부부 한 명이 한국인인 경우 배우자가 자녀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케이스도 많다.
한인 여성과 결혼한 다니엘 위긴스 씨는 “가족과 함께 한국여행을 종종 즐긴다”고 전하고 “2명의 자녀들과 함께 한국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터이자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인 위긴스 씨는 “조만한 한국을 다시 방문해 한국영화를 자막없이 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또한 아내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2년이 된 그는 현재 중급반에서 소속돼 있으며 읽기와 쓰기에 상당히 능숙하다.
또한 한인 며느리를 둔 일본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한국어로 배우러 오기도 했다.
애틀랜타 한인들이 밀집된 조지아주 귀넷카운티 지역은 한인학생들 비중이 타 카운티보다 많아서 한국 친구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 청소년들도 한국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고등학생인 브리아 웨잇 양은 한국 친구가 많아 한국어를 배우러온 케이스다. 웨잇 양은 “가장 친한 한인친구들의 부모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국학교에 왔다”고 말하고 “영어가 어려운 그들을 위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위엣 양은 “한국에도 가고 싶고 그곳에서 한국인들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브레나 그란남 씨는 “배우면 배울수록 한국어가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원어민 영어교사가 늘어나면서, 한국으로 취업차 방문하는 미국인들이 한국학교를 찾기도 한다.
한국과 한국문화가 더욱 알려지면서 성인반에 등록하는 외국인들의 숫자는 증가일로에 있다.
송미령 교장은 “초급에서 시작한 성인들이 중급반까지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입학 문의가 많아 이번 학기에 1반을 추가해 현재는 2개 반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송 교장은 “최근에는 K팝과 드라마의 영향의 크다”고 전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은 데 내용 이해가 안돼 답답한 마음에 교실을 찾아온 외국인들 다수 있었다”고 했다. 송 교장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의대와 수학과 교수들은 한국드라마를 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한국어 교재를 구하러 애틀랜타까지 직접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중급반의 50%가 한류를 접하고 한국이 좋아 한국어를 배우러 온 케이스다.
한 은행의 고객센터 관리자로 근무하는 주디 파딜라 씨는 한국문화 마니아다. 파딜라 씨는 “한국의 모든 문화 즉 음식, K-팝, TV 프로그램 등을 전부 좋아한다”면서 “한국문화에 깊이 빠져들수록 한국어를 이해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1시간 거리를 운전해 애틀랜타한국학교에 등교하는 파딜라 씨는 “한국인과 대화하는 것은 물론,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 언어장벽이 있는 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전했다.
성인들의 한국어 수업은 문법을 위주로 진행된다.
안은영 교사는 애틀랜타한국학교에서 지난 5년간 성인반을 지도해 왔다.
안 교사는 “한국어를 배우러 온 성인들은 어린 학생과는 달리 언어를 배우는 연령이 지났기 때문에 문법위주의 수업 방식이 적합하다”고 설명하고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정확히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번역 후에 그 어감(뉘앙스)를 따로 설명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학습에서 가장 어려워 하는 점은 한국어의 다양한 동사 변화다.
“예를 들어 ‘입다’가 ‘입어요’로 변화하는데, ‘춥다’는 ‘춥어요’가 아닌 ‘추워요’가 되는지를 문법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전한 안 교사는 “중급반은 다양한 동사의 언어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초급반을 지도하는 최이수 교사는 수업시간에 간단한 지문읽기, 회화는 물론 한국문화 이해를 위해 K-팝 가사들을 지도한다. 최 교사는 “학생들은 한국어의 경음, 격음 등의 발음을 힘들어한다”고 전하고 “한국어 파생어도 학생들에게 어려운 부분이므로 숙달에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 차이도 교사들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나 예능에서 ‘머리 크기’가 주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머리가 크다’고 하면 놀림의 대상이 되지만 미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에게 ‘머리가 크다’라는 어감은 ‘머리가 좋다’(Smart)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 차이를 이해시키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안 교사는 주중에 케네소대학교 교단에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한국학교와 대학강의의 수업내용은 비슷한다”고 전한 그는 “그러나 상황이나 지문을 학생들의 처한 환경에 맞춰 변경한다”고 말했다. 즉,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경우, ‘너는 이번에 몇 과목을 수강하니?’ 등 캠퍼스 라이프 위주로 하며,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은 몇 살이니?' 등 가족에 대한 지문이 많다.
성인반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한국의 연세, 고려학당 등에서 제작한 일상생활 위주의 것이다.
안교사는 “중급반의 50% 이상이 2년 넘게 한국어를 공부했던 학생들이다”며 “처음에는 자기 소개도 못했는데, 지금은 문법 이해를 바탕으로 읽기에 능숙하고 어려운 문장도 만들 수 있는 성인도 있다”고 했다.
애틀랜타한국학교는 미국인들이 한국어 교육 외에 설날, 추석과 같은 각종 단체 행사에 참여하도록 해 한복을 입어보거나 세배 등도 경험시킨다. 또한 문화체험의 차원으로 한국 민속 놀이인 ‘윷놀이’나 한국 카드게임 ‘고스톱’을 즐기기도 한다.
안 교사는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노출되는 ‘고스톱’을 배우려고 학생들이 유튜브를 찾거나, 게임 앱을 설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그럼에도 게임룰을 이해하기 어려워 많은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중급반은 한 달에 1번 정도 룰을 설명하고 직접 한국 게임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향후 안교사는 한국어 고급과정으로 보다 다양한 동사변화 활용을 가르치며, ‘말하기’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특별취재팀=이상연 편집국장, 김언정-김중열 취재기자, 이연희-권한나 편집기자>
◇이 기획시리즈는 본보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7년 재외동포언론사 지원사업에 선정돼 재단의 지원을 받아 게재하고 있습니다
애틀랜타한국학교에서 2년간 수업한 위긴스씨는 읽기와 쓰기에 능숙한 편이다.
고등학생인 웨잇양(왼쪽)은 한국 친구들의 부모와 소통하기 위해 참여한 경우다.
케네소대학교와 애틀랜타한국학교에서 강의하는 안은영 교사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문법과 동사 변화 위주로 수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