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봄비
시인 : 육근철
돌절구
적시는 소리
김칫독
고인 하늘
육근철 시인의 신작 ‘설레는 은빛’에 수록된 모든 시는 15자 넉줄 시로 구성돼 있다. 넉줄 종장 시는 시조의 종장인 3-5-4-3 형식을 따르고 있다. <편집자주>
봄은 생동의 계절.
함박꽃 그 붉은 새싹이 솟아 나오는 걸 보면 덩달아 나도 힘이 솟는다. 애기 손가락 같은 그 가녀린 새싹들이 지구를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그 어여쁜 새싹들이 올라올 때는 여지없이 찬 봄비가 내린다. 특히 비바람몰아 치는 날이면 잠을 뒤척인다. 새벽녘 후두둑 후두둑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영하의 꽃샘추위가 온 것이다. 어쩌나 저 가녀린 새싹들...
몸살
꽃잎아
너도 아프냐
봄비 젖는
홍매화
이렇게 꽃샘추위가 찾아오는 삼월이면 나도 감기 몸살을 앓는다. 마음이 상하면 몸도 상하는 것일까? 젊은 시절 시골학교 총각선생으로 새로운 학교로 부임할 때면 학교도, 아이들도, 하숙집도 다 낯설었다.
특히 무거운 교무실의 낯선 선생님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제부터는 홀로 객지에서 아이들과 정 붙여 살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삼월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고향집 어머니,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는 어린 동생들 생각에 베갯잇을 적시기 일쑤였다. 아마 그 때 앓던 삼월의 계절병이 몸에 기억되어 지금도 앓는 모양이다.
그 가슴앓이 덕으로 사물을 보는 혜안이 생겼는지 모른다. 난 잎에 맺혀있는 빗방울에 눈길이 머물 때면 싱그럽고 가슴 설레기 때문이다. 생명수 그 봄 빗방울의 덕으로 한 송이 난 꽃이 필 수 있는 것 아닐까?
<gdyuk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