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선생 1887년 3월23일 한인 최초 세례식
미국 감리교 자료에 기록...당시 신앙고백 '감동'
오늘(23일)은 다른 의미에서 뜻깊은 날이다.
지난 1887년 3월23일은 애틀랜타 최초의 한인 윤치호 선생이 세례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날이다.
에모리 대학교 최초의 외국인 유학생으로 알려진 윤치호 선생은 조선인 최초의 영어 통역관, 한국에서 최초로 자신의 노비를 전원 해방시킨 기독교운동가, 한국에 감리교 뿌리를 심은 인물이며, 독립신문 발행인, 조선체육회장 등을 역임했다.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추정되기도 하는 한편으로는 친일파라는 오명도 있다.
UCLA 옥성득 교수의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를 보면 윤치호 선생이 당시 23세의 나이로 세례 받을 때 쓴 신앙고백서가 기록돼 있다. 옥 교수가 인용한 자료는 미국 북감리회가 1887년 발간한 해외선교잡지 'The Gospel In All Lands'이다. 이 잡지는 한국 특집을 다뤘으며 한국에 대한 소개와 한국 북감리회 선교의 초창기 역사를 소개했다.
이 잡지에 실린 윤치호 선생의 신앙 고백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불신자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 하나님에 대해 듣지 못했다. 참된 종교를 접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감각적인 만족을 더 좋아하며 나를 의롭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의 악함을 깨닫고 어떠한 인간적 도움으로는 진정 죄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발견했다. 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스도가 구주시다’, ‘과거의 예언들이 현실에서 성취된 것으로 볼 때, 미래 세계에 대한 예언도 진실이다’라는 사실은 믿는다.” T. H. Yun.
한편, 지난 2017년 여름에는 윤치호 특별 전시회가 에모리 대학교 내 ‘스튜어트 A. 로즈 필사본 기록관 및 희귀 서적 도서관’(우드러프 도서관 10층)에서 열리기도 했다. 전시관에는 그가 자필로 쓴 애국가 사진이 함께 전시됐다.
에모리대 재학시절의 윤치호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