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춘설
시인 : 육근철
설중매
은은한 향기
눈인 듯
나비인 듯
육근철 시인의 신작 ‘설레는 은빛’에 수록된 모든 시는 15자 넉줄 시로 구성돼 있다. 넉줄 종장 시는 시조의 종장인 3-5-4-3 형식을 따르고 있다. <편집자주>
우수(雨水)에 춘설이 분분하다.
눈이 녹아서 비나 물로 변한다는 우수인데 눈이 하얗게 오고 있다. 올해에는 풍년이 들 모양이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한국의 청년 실업자는 늘어나고, 인간사의 일은 늘 복잡하고 시끄러운데 거북 바위 등에 피고 있는 설중매(雪中梅)는 세상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없다. 그저 애처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한 시름 잊기 위해 아직 추운 이른 봄임에도 탐매를 하러 산골짝으로 들어가 매화꽃 향기에 취해 있었나 보다.
설중매 꽃잎은 작고 애처롭다. 특히 드믄 드믄 성글게 피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오래 오래 관찰해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화려하게 다닥다닥 핀 매실 꽃 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그 향기가 일품이다.
더욱이 춘설이 분분히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에는 가지에 앉은 눈송이가 꽃잎인 듯 나비인 듯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아직 찬 이월의 겨울바람에 춤을 추는 듯 간지럽다. 하얀 눈밭에 핀 설중매 꽃을 보고 있노라면 시름도 세상일도 잊을 수 있어 좋다. 좋은 벗과 함께 꽃 잎 하나 따서 소곡주 술잔에 띄워 마신다면 그 이상 바랄게 뭐가 있겠는가?
한 잔 소곡주
잊지 말게나
꽃잎 띄워
마신 봄
소곡주는 충남 서천의 한산 이씨 가문에서 빗어낸 전통 술이다. 서천 쌀로 만든 술로 그 향기가 일품이다. 여기에 설중매 꽃잎 띄워 자네 한잔 나 한잔 술을 마시니 무릉도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늘은 복잡한 세상사 잠시 잊고 매화 꽃 꽃잎 띄워 술 한자 마셔 볼 일이다.<gdyuk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