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주, 고 그레이엄 목사 추모행렬
오는 2일 장례식엔 트럼프 등 2천명 이상 초대
지난 21일 99세로 소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유해가 24일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주 최대 도시 샬럿의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에 도착해 26일과 27일 이틀간 조문객을 받는다. 운구 행렬에는 엄청난 군중과 차량이 밀려들어 ‘미국의 목자’ 그레이엄 목사를 추모했다.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에서는 많은 차량과 경찰 오토바이들이 그의 운구차를 호위하며 뒤따랐고 길가에 모여 선 사람들은 인도와 차도 위에서 운구행렬을 지켜보았다. 가족들은 그레이엄 목사의 관을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 안에 안치했다. 이 곳은 빌리 그레이엄이 가장 사랑하던 곳으로 애슈빌에서 복음선교회를 만들고 이 곳에서 수련원을 개설했을 때부터 지냈던 곳이다. 운구 행렬은 그레이엄 목사가 쇼핑을 하고 기차를 탔던 블랙 마운틴과 자택이 있었던 몬트리트를 지나 이 곳에 도착했다.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아버지의 시신을 샬럿으로 가져오겠다는 부친과의 약속을 지켰다면서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처남인 레이튼 포드도 이번 행렬에 모든 사람들이 감사와 슬픔을 표했다고 말했다. 99세를 일기로 노스 캐롤라이나 산악지대의 자택에서 사망한 세계적인 선교사 그레이엄 목사는 전 세계를 돌며 부흥집회와 TV중계를 통해 수억 명의 크리스천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이 곳에서 이틀간 조문을 받은 후 그의 유해는 28일과 3월 1일에는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원형홀로 옮겨져 민간인으로는 2005년 흑인민권운동가 로사 파크스 이후로는 처음으로 의원들과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게 된다.
이 후 유해는 다시 샬럿으로 운구돼 2일 장례식과 매장으로 7일 간의 일정을 모두 마감하게 된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장례식은 3월 2일 낮 12시, 1949년 그가 LA에서 천막 선교를 할 때와 똑같은 천막을 도서관 주차장에 세운 뒤 그 곳에서 거행된다. 참석자는 모두 초대 손님으로 2300명이 될 것이라고 가족 대변인 마크 드모스는 말했다.
장례기간 중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은 문을 닫지만 수많은 신도들과 추모객들이 이 곳을 찾아 둘러보고 꽃다발을 헌정하고 있다. 루이지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제작된 소박한 합판 관에 안치된 그레이엄 목사는 2007년 소천한 부인 루스 그레이엄의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
1918년 11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태어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6세에 헌신을 결심했다. 이후 플로리다 성서신학교와 휘튼대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9년 LA 부흥집회를 계기로 큰 성공을 거둔 후, 1950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BGEA)를 창설하여 전 세계를 누비며 복음 전도에 나서 '세계적인 부흥사'가 됐다.
그레이엄 목사는 전세계에 걸쳐 ‘십자군 운동’을 실시해, 총 185개국에서 2억1000만명에게 설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한 해 동안에만 250만명 이상이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다고 전한다. 특히 TV와 위성방송, 비디오와 영화, 인터넷 등 발전하는 매체들을 적극 활용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1973년 한국 여의도 광장에서 4일 동안 120만 명 앞에서 설교하며 한국 기독교 성장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94년 열린 애틀랜타 집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포함한 수만명의 사람들이 조지아돔에 모였다. 또한 고인은 칙필레의 창립자인 고 트루엣 캐시 대표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시신 운구 행렬.